산이는 왜 박근혜를 ‘나쁜 년’이라고 불러야 했나

‘티나’였을 것이다. 한국 힙한 씬에 최초로 등장한 팜므파탈의 원형, 남자 지갑에 빨대 꽂고 꿀 빨면서 뒤에서는 오입질로 뒤통수치는 남성들의 적. 그 한국형-된장녀형 악녀의 기원을 찾으려면 브라운아이드소울 1집 <Soul Free>(2003)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CB Mass에서 막 손 털고 나온 최자와 개코가 피쳐링한 곡 ‘Candy’에 등장하는 티나 얘기다. 악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최자와 친구를 만류하는 개코의 다이얼로그 형식으로 전개되는 랩핑에서 티나는 ‘소문이 너무 안 좋고’, ‘과거가 서쪽에 흐르는 바닷물처럼 불투명하’며, ‘나이가 스물 한 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너보다 네 주머니 사정에 더 관심이 많은’ 여자로 묘사된다. 호구 잡힌 최자는 티나에게 명품 구두 사주다가 방세도 밀리고 친구들에게 돈이나 꾸러 다니다 빚더미에 앉는 신세로 전락한다. 최자를 찬 티나는 너무도 신속하게 다른 남자로 갈아탄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는지, 티나는 1년 후 발매된 다이나믹듀오 1집 <Tax Driver>(2004)의 ‘비극 Part 1’에서 다시 이름을 올린다. 전작 캐릭터와의 연속성을 잃지 않은 ‘좀 놀던 애’ 티나는 -지난 악행에 대한 인과응보처럼- 울면서 여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 에이즈가 의심되니 같이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90년대와 00년대 초반 한국 힙합씬에서는 미국 동부 힙합의 영향을 받은 진지하고 무거운 톤이 주류를 이뤘다. 허니패밀리나 피플크루, 드렁큰 타이거, 주석, 가리온 등의 디스코그라피를 톺아보면, 이제 막 형체가 생기기 시작한 힙합 씬에서 자신의 위치를 천명하는 선언적인 곡을 타이틀로 삼고, 그 외에 파티 풍의 펑키한 곡이나 제법 힘을 준 사회비판가를 껴넣은 앨범 구성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다이나믹듀오의 스토리텔링은 기실 혁명이었다. 다이나믹듀오와 리쌍의 데뷔는 90년대 국내 힙합의 ‘후까시’를 내려놓아도 충분히 힙합적일 수 있고, 돈은 더 잘 벌린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적 근거가 됐다. 이를 분기점으로 한층 낮은 삶의 공간으로 내려온 힙합은 본격적으로 ‘대중 가요’의 바운더리에 소속되기 시작한다.

세상 범인들의 군상을 수필처럼 그려내는 개코의 탁월한 능력에 힘입어 세상 빛을 본 ‘티나’ 얘기는,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형식의 적극적 여성 뒷담화였다. 리스너들은 어쩐지 허구의 인물 같지 않은 티나라는 캐릭터에 퍽 흥미를 느꼈던 모양이다. 티나가 누구인지 밝혀내자는 과정에서 모 여성 연예인이 실제 인물로 지목되었고 암암리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라며 기정사실화되기도 했다. ‘비극 part. 1’ 이후로는 다이나믹 듀오도 티나에 대한 노래를 만들지 않았지만, 랩으로 여성의 행실을 씹는 행위가 퍽 짜릿했던지 티나는 한국 힙합 씬에서 사라지지 않고 이름을 바꾸며 귀환했다. 비슷한 시기에 본격적인 ‘된장녀 시대’가 열렸고, 그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된장녀의 제한적 용법을 한국 여성 전반으로 대폭 확장시킨 ‘김치녀’가 등장했다. ‘남자 주머니 거덜 내고 떠난 년’. 올드 스쿨 힙합에서 그저 막연한 흠모 혹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노래되던 여성에게 최초로 부여된 현실적 부피감이었다. 

‘팜므파탈’이라는, 뭔지 몰라도 꽤 멋져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던 그 여성들은 사실상 선택 받지 못한 남성의 분노를 표출하는 욕받이 무녀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 힙합은 성녀/창녀의 이분법적 프레임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대표적 공간이다. 남성이 주도하는 서사에서 여성은 나를 선택한(할지도 모르는) 대상과 나를 선택하지 않은(않을) 대상으로 양분된다. 전자의 그룹에는 구애의 대상이나 이미 정복한 대상, 드물게 젊은 여성이 아닌 경우, 어머니가 묶인다. 여성은 성적 긴장감과 섹슈얼한 환상을 일으키는 대상으로 설정되며 남성 화자는 가슴이 어떻고 엉덩이가 어떻고 하는 몸매 찬양으로 세레나데를 대신한다(개리, ‘엉덩이’, 박재범, ‘몸매’, 지코, ‘유레카’, 스윙스, ‘Femme Fatale’, 크러쉬, ‘아름다운 그대(feat. 최자)’, 자이언티, ‘Babay(feat. 다이나믹 듀오)’ 등). 이것은 사실상 찬양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인데, 그 이면에는 ‘뭇 사람들이 선망하는 히로인’을 정복한(혹은 하고자 하는) 남성의 나르시즘과 자기 과시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는 ‘티나’의 변종들을 무수하게 양산했다. 구애를 거절한 여성, 성적으로 개방적인 여성, 성형수술을 한 여성, 사치스러운 여성을 향한 멸시와 혐오는 한국 힙합의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잡았다(데프콘의 초기 곡들, 버벌진트, ‘우아한년 2012’,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스윙스, ‘양아치 2014(feat. 블랙넛, 기리보이)’, 송래퍼, ‘That Girl(feat. 로꼬, 크라이베이비), 개코, ‘제정신이 아냐’, ‘세상에’, 빈지노, ‘Nike Shoes’ 등). 

그들은 여성에 삶에 대한 심각한 무지와 몰이해를 십시일반으로 켜켜이 쌓아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Mnet <쇼미 더 머니>의 ‘여혐’ 논란은 여성의 외모, 성격, 심지어는 출산까지도 펀치라인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한국 힙합의 현주소를 눈 앞에 펼쳐놓았다. 남성의 욕망을 만족시켜주지 않는 대상-여성, 혹은 남성의 기준에서 어긋난 대상-여성에 대한 혐오를 극단적인 폭력적 충동으로 표출한 사례가 바로 블랙넛이다. 그의 세계관이 가진 문제점들이 공론화되어도 그의 방송 출연이나 활동에는 아무런 페널티가 가해지지 않았다.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여성에게는 이 같은 시선/상상력을 가진 남성이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심적 부담 내지는 위협으로 작용하는데, 남성 리스너들이나 <쇼미 더 머니> 제작진은 블랙넛을 ‘괴짜’나 ‘악동’ 정도로 취급하는 그 온도차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수많은 남성들이 블랙넛의 상상일 뿐이고 노래가사일 뿐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고 블랙넛을 감쌌다. 왕따 가해자가 피해자를 마구 이지메한 뒤 어깨동무를 하며 ‘장난이었던 거 알지? 우린 친구지?’라고 겁박하듯이 말이다. 나머지는 랩 실력은 인정해야 한다거나 나는 가사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며 문제점을 묵인 및 회피했다. 이 주동자와 방관자의 끈끈한 연대는 끝끝내 여성 혐오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여성의 도구화를 공고히 하고, 자기성찰마저 불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기에 이른다.

차마 위를 올려다보지 못하고 아래로만 향하는 디스, 즉, 여성 갈구기는 이렇게 국내 힙합 정체성의 한 조각이 됐다. 자기 과시 혹은 여자 이야기라는 소시민적 주제를 벗어나지 못하던 래퍼들은 현 시국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국에 이르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가리온을 제외한 모든 래퍼들이 침묵을 지켰다. 대중은 힙합의 비판 정신을 호명하기 시작했고, 난처한 상황에서 요구에 가장 먼저 부응한 것이 자칭 랩 지니어스라는 산이(San-E)였다. 기함하게도 ‘나쁜 년(Bad Year)’이라는 노래를 들고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그는 바람 피운 여자친구를 욕하는 스토리 뒤에 ‘공황장애’, ‘하야’, ‘꼭두각시’, ‘채 숨 쉴(최순실)’ 같은 현 시국과 관련한 몇몇 키워드들을 교묘하게 숨겼다. ‘나쁜 년(Bitch)’과 ‘나쁜 년(Bad year)’의 동음이의 관계를 이용하고 한글 제목 뒤에 핑계처럼 붙은 ‘Bad Year’ 덕분에 ‘Bitch’도 심의의 허들을 벗어나 달린다. 할 말도 대놓고 하지 못하고 ‘병신년(丙申年)’ 수준의 말장난으로 시시덕거리는 일차원적 언어유희는 ‘나쁜 년’에 빠져나갈 구멍을 듬성듬성 뚫어 놓으며 행색을 구차하게 만든다. 

그뿐이다. 산이는 시국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유행따라 쓸 수 있을 정도의 안전하고도 피상적인 하야 요구로써 ‘나쁜 년’을 들먹였다. 대통령의 성별에서 스토리텔링의 실마리를 발견, 국가 원수가 국정을 공정하게 수행하지 못한 사건을 ‘뒤에서 여자친구가 호박씨 깐 사건’으로 치환하는 솜씨는 산이의 변변치 못한 여성관을 재확인시킬 뿐이다.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 1과 2에서 여성 래퍼들이 머리채 잡고 싸우는 장면을 팔짱 끼고 흥미롭게 관망하던 MC, 자신의 ‘작업’에 넘어오지 않는 여성을 ‘못 먹는 감/신 포도(Sour Grape)’에 비유하고, ‘Body Language’에서 남성은 선생님으로 분하고 여성은 노예가 되는 역할 놀이 성관계를 노래했던 래퍼 산이는, 한국 힙합에서 돌고 도는 레퍼토리, 십 년을 넘도록 조리돌림당해 시체마저 너덜너덜해진 그 가상의 마녀를 다시 일으켜 단두대에 올린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이 아니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성혐오적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남성 대통령의 죄과를 남자친구의 외도에 비유하고 ‘나쁜 놈’이라는 제목을 붙인 힙합 곡이 얼마나 재미없을지 상상해보자–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을 약점으로 삼아 그 자체로 모욕을 주는 워딩을 무기로 사용하면서 그것이 ‘재치’이고 ‘센스’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면, 이것이야말로 산이와 국내 힙합 리스너들의 저열한 인권 감수성을 증명하는 발로인 셈이다.

굳이 사회비판곡으로 분류해야 한다면 산이의 ‘나쁜 년’은 아주 장렬하게 실패한 케이스가 될 것이다. 논제나 의견을 결여하고 있을뿐더러 자기 표현에조차 실패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쁜 년’이 ‘한 여름의 꿀’이나 ‘이별식탁’ 같은 전작들처럼 가볍게 흘려듣고 넘기는 대중가요라고 한다면, 그래도 여전히 실패다. 이처럼 구태의연한 접근에 눈살을 찌푸리고 태클을 거는 대중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다’라는 상찬을 받고 싶은 얄팍한 술수에 머리를 쓰다듬어주기에는 리스너들이 인권 감수성이 너무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넘어뜨리고 싶은 암컷 또는 욕 먹어도 싼 썅년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하겠다는 여성 리스너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얼마나 많은 래퍼들이 ‘세상에 이런 여자 있잖아’ 하고 가상의 악녀를 씹으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무의미하게 재생산하고, 또 얼마나 많은 노래들이 이 스테레오타입을 삐라처럼 세상에 뿌려왔던가. 래퍼들은 이제 ‘티나’를 보내주길 바란다. 그들이 현 시류에 맞게 익혀야 할 시대 감각이 있다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평등과 균형 감각이다. 그것이 다른 무엇이라 할지라도, 약자를 구속하며 연대감을 느끼고 권력을 재확인하는 오만함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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