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와 ‘black’: 섹스 심벌의 성애화 탈출기

2005년 당시 스포츠 신문의 이효리 관련 기사 헤드라인

이효리가 스포츠신문 1면을 대서특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효리보다도 효리 가슴이 주인공이었다고 해야겠다. 이효리 신드롬에는 김완선이나 엄정화 같은 여성 솔로 가수를 소비하던 90년대적 양식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텐미닛’의 대성공을 기점으로 여성의 신체는 조각났다. 공공의 품평 대상이 된 가슴을 누군가는 욕망하고, 가짜 가슴이라 비난도 하였으며, 노골적 성 상품화라고 백안시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효리는 너무도 잘 나갔고, 이후 가요계에는 바스트를 강조하는 섹시 여가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꿀벅지’라는 소문과 함께 유이의 주가가 급등했고, 전효성을 ‘젖효성’이라 부르며 희롱하는 치들이 생겼다. 명품 쇄골, 명품 가슴, 명품 허리, 명품 각선미, 명품 골반, 애플 힙 …… 끝이 없었다. 섹시 스타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하자 매스컴은 이효리를 링 위로 끌어올렸다. ‘효리 비켜’라는 상투문으로 시작하는 신예 홍보 기사들은 여성 스타의 대결 구도를 형성했고, 이효리는 늘 챔피언 벨트를 빼앗기기 직전의 노장 역할이었다. 돈방석에 앉은 기쁨의 비명보다 여성으로서 겪는 극도의 피로감에 공감할 즈음, 이효리가 속마음을 열어 보인 방송이 있었다. 2009년 엠넷에서 방영한 ‘오프 더 레코드’였다.

‘오프 더 레코드’ 8화 중(출처: http://allserene.tistory.com/181)

 

2집 타이틀곡 ‘Get’ ya’가 표절 논란과 함께 기대 이하의 성과를 내고, <세잎 클로버>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등 드라마 도전이 악수로 돌아오며 대중의 비호감을 차곡차곡 적립하던 이효리에게 ‘오프 더 레코드’는 일종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 인물을 3개월간 24시간 밀착 촬영하는 다큐멘터리적 포맷은 그를 둘러싼 편견을 해명하기에 가장 적합했을 것이다. 넓은 집에서 반려묘들과 대화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독신 여성, 파자마 차림으로 찾은 맥줏집에서 친구와 연애 고민을 나누는 평범한 싱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네티즌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보는 직업인 이효리는 나도 사람이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유방암 검진 엑스레이 결과를 펼쳐놓고 의사에게 ‘천연 가슴’ 진단을 받아내거나, 성형외과 의사로 일하는 지인에게 ‘자연산’ 코 인증을 받는 장면은 애잔하기도 했다(그래도 짜고 친다며 힐난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김연아가 시구하는 야구 경기를 관람한 다음 날 ‘이효리가 시구를 거절당했다’, ‘김연아에게 시구 자리를 밀렸다’는 가짜 뉴스로 도배된 인터넷을 확인하고 이불 속에서 서럽게 우는 장면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칫하면 그저 그런 자기변호 쇼로 끝날 위험성이 있는 프로그램마저 이효리가 끌어나가면 묘하게 ‘진정성’이 있었다. 그에게는 가식 없이 당당한 성정이 있었으므로.

‘오프 더 레코드’ 중 한 장면

 

영리하게도 ‘오프 더 레코드’ 종영 후 SBS ‘패밀리가 떴다’ 원년멤버로 합류한 그 시점에 내놓은 ‘U-Go-Girl’은 다시 대히트를 쳤다. 브래지어를 고쳐 입는 안무로 익살을 떨 정도로 뻔뻔해진 이효리의 건강하고 발랄한 핀업걸 콘셉트는 남성보다도 여성 팬들의 호응을 끌었는데, 어쨌든 스스로를 섹시 아이콘으로 성애화한다는 면에서 ‘U-Go-Girl’은 전작들을 계승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효리는 눈썹 머리를 표범처럼 칠하고 “너의 말이 나는 그냥 웃긴다”라는 공격적 후크를 반복하는 ‘치티 치티 뱅뱅’으로 외계에서 침공한 힙합 전사를 표방했으나, ‘H-Logic’ 앨범 수록곡 5곡이 표절로 인정되면서 또다시 활동을 불미스럽게 종료한다. 애시드 재즈 밴드 ‘롤러코스터’ 출신인 기타리스트 이상순과의 연애 인정은 본격적인 노선 전환의 분기점이 되었다. 유기동물 보호와 채식 등 실생활 차원의 사회운동을 실천하며 ‘연예계 물’을 씻어내는 데 몰두하는 듯하던 이효리는 3년간의 휴식 끝에 5집 ‘Monochrome’으로 복귀한다. 진한 컨투어링에 추어올린 눈썹 산, 입술을 덮은 블랙 립스틱은 뭇 남성들을 유혹하기엔 지나치게 ‘무서웠다’. 착하게 살길 포기하겠다며 남자 댄서들의 무릎을 밟고 춤을 추는 ‘배드 걸즈’ 활동이 끝난 뒤 이효리는 결혼식을 올린다. 제주도 ‘소길댁’이 되어 보낸 삼십 대 후반은 두 번째 휴지기였다.

 

‘치티 치티 뱅뱅’ 뮤직비디오 

‘배드 걸즈’ 뮤직비디오

가십과 루머를 몰고 다니던 섹시 디바의 전원생활이라니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있을까! 자연인으로서 은둔하는 중에도 연예인의 삶에 ‘알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개인 가택은 관광명소나 되는 양 초인종을 눌러대는 방문객들의 발걸음에 몸살을 앓았다. ‘킨포크 라이프’로 분류된 이효리의 라이프스타일은 렌틸콩을 유행시킬 만큼 건재한 영향력을 과시했지만, 누군가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힙스터 병’이라 칭하며 어울리지 않는 억지 콘셉트라고 괄시하기도 했다. ‘오프 더 레코드’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 말들이 많아진다 싶으면 모든 걸 확 까서 보여줘 버리는 대범함을 지닌 이효리는 이번에도 지극히 이효리스러운 카드를 꺼냈다. ‘효리네 민박’은 이효리와 이상순이 실거주지에 일반인을 초대해 게스트하우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관음증 해소의 판을 깔아 놓는다. 오만 데 설치된 카메라가 이효리의 사적인 영역 -집안 공간, 결혼 생활, 부부 관계, 그리고 서른아홉 이효리 그 자체를 포함하는– 을 물리도록 비춘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면서도 소유욕을 내려놓지 못해 갈등하고, “난 마흔 동안 뭐 했지?”라며 신세 한탄을 하거나, 동성 간 우정을 부러워하며 은근슬쩍 끼어들고 싶어하는 이효리는 ‘오프 더 레코드’에서 보았던 캐릭터를 연장한다.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다. 햇볕이 들어오는 식탁에서 차를 마신다. 개털을 깎고 산기슭으로 산책하러 다니며 배우자와 함께 하루를 보낸다. 은퇴 노부부의 일상 같은 이 낭만적인 생활은 비현실적이지만 기만적이지는 않다. 시부모와 통화하면서 남편 이발 좀 시키라는 잔소리를 듣고, 남편의 타박에 사려던 슬리퍼를 내려놓는 이효리는 진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시청자 반응은 엇갈린다. ‘이효리도 결혼하면 똑같다’고 안쓰러워하는 사람들 저편에는 저것도 부자라 가능한 생활이라며 빈부격차를 실감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또 다른 오해가 싹트기 전에 이효리는 ‘라디오 스타’나 ‘해피 투게더’ 등 토크형 예능을 해명장으로 활용한다. 이상순과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을 완벽한 남자로 치켜세우기보다 서로 잘 맞는 짝,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동등함을 강조한다. 부에 관해서라면 겸손이 절대적 미덕으로 여겨져 온 사회에서 “나 돈 많다”고 으쓱거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순탄한 부부 사이도, 꿈의 스몰 웨딩도, 자연주의적 생활도 자본의 뒷받침을 받고 있음을 시원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얄밉지 않다. 김구라의 불링을 맞받아치고 남성 패널들의 공세에 기죽지 않는 흔치 않은 여성 게스트. 재력과 명성을 모두 가진 여성 스타의 ‘분수’에 맞는 애티튜드는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자기객관화가 잘 된 사람을 볼 때 느끼는 편안함은 이효리의 최대 매력이라고 할 만하다. 음역대와 표현력이 제한적인 보컬, 좋지 않은 신체 조건과 리듬감을 가진 댄서로 유례없는 흥행을 하면서도 이효리는 본인의 능력적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효리에게 6집 ‘Black’은 아마도 최선의 아웃풋이었을 것이다.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본인이 전문 작곡가의 포텐셜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보컬이 아니라는 이유로 작곡을 시작한 이효리는 힘을 빼고 부를 수 있는 멜로디들로 새 앨범을 채웠다. 평면적인 나머지 아마추어적인 가사들에는 적어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있다. 팝, 일렉트로닉, 록, 힙합, 인도 음악 등 다양한 장르적 관심을 음울하면서도 차분한 톤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Black’의 성취는 무엇보다도 ‘U-Go-Girl’ 이후부터 슬금슬금 모색해 온 탈-성애화의 완성이라는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새댁 생활은 효리가 예전보다 섹시하네 별로네, 누가 효리보다 더 섹시하네 하는 평가의 단상에서 벗어날 도피처였겠지만, 그의 디스코그래피마저 해방해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껏 박자를 쪼개는 안무를 다급히 따라가느라 바빴던 이효리는 전형적인 K팝 댄스 대신 신체를 골고루 쓰며 굵은 선으로 움직이는 퍼포먼스를 무대에 올린다. 무용가 김설진이 참여해 현대무용의 영향이 짙게 드리운 ‘Black’, ‘서울’, ‘White Snake’ 퍼포먼스는 여성 K팝 스타가 남성을 향해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고, 윙크하거나 하트를 날리는 관습적 언어를 탈피한다면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희미한 해답을 제시한다. 서울 도심과 제주도 금오름을 오가며 후드 집업을 뒤집어쓴 채 무아지경 춤을 추고(‘서울’), 보정 패드를 끼지 않은 비키니 탑을 입고 모래바람 속을 구르는(‘Black’) 이효리는 완벽하지는 않을지언정 너무나 자유롭다(물론 감독 룸펜스의 유려한 촬영기술 덕분에 음악방송보다는 뮤직비디오가 훨씬 좋게 보인다). 댄스 가수로서의 제한적 역량을 의식하면서 15년 전과는 달라진 삶의 가치를 반영하려는 모색 속에서 이효리는 마침내 한국 대표 섹시 스타라는 챔피언 타이틀을 내려놓는다. 그 결과물이 경지에 올랐는가를 묻는다면 회의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효리의 아티스트적 한계는 노력으로도 경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천부적 자질에 빚을 지고 있는 관계로 숙명처럼 그의 뒤를 따라다녀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효리는 여전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의 솔직한 바탕 위에 그려진 욕망의 궤적들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 나가며 서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 인생 전체가 하나의 리얼리티 쇼인 듯이, <트루먼 쇼>의 관객이 된 기분으로 이효리를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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