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유통기한에 관하여: 아재와 미소녀의 불유쾌한 만남

와인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유우-머에 그렇게들 박수를 쳐댔더랬다. 여자가 불티나게 팔리는 나이는 스물 셋 넷, 제값을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은 스물다섯, 스물여섯은 땡처리, 스물일곱부터는 폐기처분이라는 뜻이었다. 서른이면 ‘상폐녀(상장폐지녀)’라고도 했다. 대중 일반의 공감을 등에 업고 포장지만 바꿔가며 신나게 유포되어 온 메시지 “팔릴 때 좋은 남자 잡아라(시집가라)”는 농담을 가장한 브레인워싱이었다.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들자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나서서 ‘꺾였다’며 자조하거나, 당장 결혼을 전제로 한 관계를 시작해야 할 것처럼 조급해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4년제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기껏해야 사회 초년생이었던, 소위 ‘결혼 적령기’에 한참 못 미친 나이였다. 

볼썽사납게도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짝을 지은 비유는 “남자는 와인”이었다. 연식이 높을수록 경험치가 쌓여 매너를 알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남성의 인생 그래프에서 연령과 매력은 정비례한다는 자화자찬이었다. ‘미중년’, ‘꽃중년’, ‘영 포티’ 등 중년을 예외적으로 추켜세우는 언어는 남성을 대표 형상으로 갖는다. 중년 남성을 향한 조롱에는 맥락을 무시한 오독 혹은 의도적 저항이 뒤따랐다. 인터넷에서 시대에 뒤처진 남성 유저를 가볍게 면박 주던 멸칭 ‘아재’가 귀여운 자학 개그로 전유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재들이야말로 아재라는 새로운 이름을 퍽 아끼고 사랑했다. ‘아재’는 접두사/접미사로써 적지 않은 관용어를 새끼 쳤고(‘아재파탈’, ‘아재 개그’, ‘아재 입맛’, ‘아재력’) 한참이나 어린 여성을 흠모하는 행위에서 성애적 뉘앙스를 탈락시키기 위해 고안되었던 호칭 ‘삼촌 팬’도 ‘아재 팬’으로 냉큼 교체되었다. 남성에게 나이 듦이란 여성의 그것만큼 부끄럽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젊음과 미모가 가격 경쟁력이라는 사이비-자본주의적 논리는 여성의 ‘시장 수명’을 앞당겼다. 원더걸스의 소희(‘TELL ME'(2008), 17세),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L.O.V.E'(2008), 22세), 애프터스쿨의 유이(‘DIVA'(2009), 23세), 시크릿의 전효성(‘MAGIC'(2010), 22세), 현아(‘버블팝'(2011), 20세), 수지(‘건축학개론'(2012), 19세), EXID의 하니(‘위아래'(2014), 23세), 걸스데이의 혜리(진짜사나이 여군특집(2014), 21세), A.O.A.의 설현(‘짧은 치마'(2014), 20세), 트와이스의 사나(‘CHEER UP'(2016), 20세)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진을 친 여성 연예인의 전성기는 공격적인 소비 후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패턴을 그린다. 코스메틱 트렌드가 잡티 없이 하얀 아기 피부를 강조하고, 안티 에이징 마케팅의 타깃 연령이 20대 초반까지 하향되며, ‘방부제 미모’가 여성의 외모를 칭찬하는 관용어로 자리 잡는 사이, 미디어 속 중년 여성은 청년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시기하는 존재로 즐겨 묘사되곤 했다. 기준선을 통과한 여성이 받는 욕망의 크기와 그렇지 않은 여성이 당하는 굴욕의 크기를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에이지 셰이밍(Age Shaming)은 팻 셰이밍(Fat Shaming)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옭아맸다. 초 저연령 여성을 향한 욕망에는 여성에게 혼전순결을 기대하는 문화(‘무경험이거나 성 경험 회수가 최소한일 것’)와 빈곤해진 청년세대의 기회비용 계산(‘관계 유지 비용이 낮을 것’)이 반영되어 있음에도, ‘불량품’ 대신 싱싱하고 건강한 파트너에 이끌리는 것은 번식 개체로서 남성의 본능일 뿐이라며 여성에게 화살이 돌아가곤 했다. 노산은 대표적인 핑계였다.

 

드라마 ‘총리와 나’의 한 장면

 

강제 유행의 연표

시작은 젊은 육체의 싱그러움에 애욕을 품는 중장년층 남성의 시선을 성황리에 판매했던 영화 ‘은교'(2012)가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는 130만 관객밖에 들지 않은 ‘은교’가 그토록 유명해질 수 있었던 비결은 ‘진짜 고등학생’처럼 수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신인 연기자 김고은의 등장, 그리고 그가 연기한 성애 묘사의 수위였다. ‘은교’를 양성적 포르노로 즐기고자 하는 일부 관객층의 욕망 앞에서 영화는 순수문학 원작이라는 작품성 어드밴티지가 무색하게 가십화되었다(‘은교’의 연관검색어로 어떤 키워드들이 걸려있는지 보라). ‘은교’가 각종 패러디와 인용을 낳으며 한동안 여론을 휩쓸고 난 이듬해에는 KBS2 드라마 ‘총리와 나'(2013~2014)가 유례없는 무리수를 던졌다. 스무 살 차이의 이범수와 윤아를 계약 결혼 관계의 메인 커플로 캐스팅한 것이다. 드라마 팬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총리와 나’는 최연소 국무총리 권율(이범수 분) 캐릭터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극중 권율은 ‘섹시한 정치인’, ‘연애하고 싶은 남자’, ‘남편과 바꾸고 싶은 남자’ 타이틀로 여성지를 도배하는 인물로 묘사되는 한편, 실제 언론 홍보를 통해서도 ‘러브 액츄얼리’에서 영국 총리를 연기한 휴 그랜트와 이범수의 유사성을 강조한 조합어 ‘휴범수’를 밀어붙였다. 극 안팎의 온도 차만 극명해질 따름이었지만.

‘총리와 나’가 마신 고배 덕분인지 한동안 주춤하던 초연상남-초연하녀 커플은 2016년 다시 쏟아져나왔다. 상반기에는 ‘결혼 계약'(16세 차), ‘딴따라'(17세 차), ‘옥중화'(16세 차), ‘마녀보감'(14세 차), ‘미녀 공심이'(15세 차)가 앞뒤를 다투더니, 연말에 이르면 ‘도깨비’가 마침내 득점을 올린다. ‘아저씨라도 (멋진 남자라면) 괜찮아’, ‘(내가) 아저씨라도 괜찮아’라는 감정을 설득하지 않고는 흥행할 수 없었을 ‘도깨비’는 천년 묵은 도깨비와 불운한 소녀의 사랑이라는 극단적 허구성을 방패 삼아 로리콤과 오지콤(미중년 판타지) 낭만화에 주력한다. ‘도깨비’의 성공이 시청자의 심리적 저지선을 무너뜨리기라도 한 듯이 2017년에도 ‘블랙'(14세 차), ‘황금빛 내 인생'(12세 차), ‘투깝스'(14세 차), ‘슬기로운 감빵생활'(13세 차) 등 십이간지를 한 바퀴 돈 남녀가 줄줄이 주선되었다. 특히 김은숙의 차기작 ‘미스터 선샤인'(2018)은 전작 ‘도깨비’를 향한 비판이 무색하리만치 구태의연한 캐스팅으로 논란을 재점화했다. ‘아가씨'(2016)에서 소녀 ‘숙희’로 얼굴을 알린 김태리와 데뷔 30년 차 중견 배우 이병헌의 만남은 ‘은교’ 김고은과 ‘멜로 킹’ 공유의 결합을 닮았으면서도 대폭 넓어진 연령 격차(20세)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이에 질세라 제목부터 노골적이기 그지없는 ‘나의 아저씨'(2018)에서는 이선균과 아이유(18세 차이)가 짝을 맞추게 됐다. 20대 여성과 40대 남성이 서로를 치유하는 ‘힐링 드라마’라고 했다.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

 

중년 남성과 청년 여성의 로맨스, 로맨스가 안 되면 감정적 교류라도 팔아내고야 말겠다는 부단한 영업 공세로 이제는 예닐곱 살 차이가 우스워졌다. 문제의식은 ‘띠동갑 커플’, ‘나이 차 극복’, ‘키다리 아저씨’, ‘아재파탈’ 등 가볍고 트렌디한 키워드 속에 희석된다. 일 년에 두세 편쯤 나올까 말까 한 ‘특수 시장’ 연하남 로맨스와는 현격히 차별화된 전략이었다. 연상 여성이 느끼는 배덕감이나 사회적 장벽을 강조한 ‘로망스'(2002, 김하늘-김재원, 3세 차),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이보영-이종석, 10세 차), ‘밀회'(2014, 김희애-유아인, 19세 차), ‘사랑의 온도'(2017, 서현진-양세종, 7세 차),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노처녀’를 전형으로 내세워 여성 시청자를 공략한 ‘올드미스 다이어리'(2004, 예지원-지현우, 11세 차), ‘달콤한 나의 도시'(2008, 최강희-지현우, 7세 차), ‘마녀의 연애'(2014, 엄정화-박서준, 19세 차), 여성 배우의 연령을 내리고 남성 배우의 연령을 높여 인위적으로 설정 밸런스를 맞춘 ‘별에서 온 그대'(2013, 전지현-김수현, 7세 차/극중 김수현 2세 연상), ‘고백부부'(2017, 장나라-손호준(3세 차/극중 동갑)), ‘병원선'(2017, 하지원-강민혁(13세 차/극중 30대)) 등 연상녀-연하남의 로맨스는 ‘비정상성’ 자체를 갈등의 조건으로 삼거나 그 비정상성을 인위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성립되지 않았던가.

매번 이벤트성 기획에 그쳤던 ‘연하남 로맨스’와는 달리, 40대 남성과 20대 여성 간 ‘케미스트리’를 일방적으로 공급하며 이러한 관계성을 슬금슬금 정상화하는 방송가의 동향은 의심을 살 만했다. 비판이 잇따르자 업계에서는 2010년께부터 간헐적으로 언급되던 ‘남배우 기근설’을 방패 삼았다. 20대 주연급 남성 배우들의 연이은 부재(입대)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울 것도 없는 남배우 기근설은 신진 남배우 수급의 맥이 갑자기 끊긴 배경과 젊은 여배우와 중견 남배우를 굳이 접붙여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여성 연기자를 기용할 때는 인지도나 연기력이 문제 될지언정 20대라는 신체적 조건을 우선시하면서, 남성 연기자가 ‘연기파’ ‘톱스타’라면 나이를 불문하는 남성 중심적 의사결정 관행을 방증한다면 모를까.

무엇이 진짜 기근인가 

“젊은 남배우가 없다”는 이 빠진 해명보다 합리적으로 실마리를 제공하는 쪽은 오히려 ‘여배우 기근설’이다. 최진실과 김희애가 히로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에도 신문에 등장할 만큼(‘최진실 김희애, MBC-TV ‘폭풍의 계절’서 첫 연기대결'(연합뉴스 1993. 04. 19)) 방송가-영화계의 고질적 근심이었던 여배우 기근설은 배우 풀이 형성되어 온 메커니즘을 가늠케 한다. “남자 배우는 자원이 풍부해 골라 쓸 수 있는데 여배우는 기근이 심해 울며 겨자 먹기로 신인을 써야 할 때도 있다”며 “결혼하기 위해 배우를 하는 것이냐. 여자 배우들에게 공인의식 직업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던 강우석 감독의 ‘일침'(‘性차별과 차이'(동아일보 2005. 3. 3.))에는 업계의 인식이 낯뜨겁게 노출되어 있다. 그 많은 여배우가 ‘연기력(흥행 파워)이 부족해서’, ‘직업의식이 부족해서’, 쉽게 말해 내적 역량이 부족해서 스스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입대처럼 불가항력적이고 외부적인 요인으로 발생했다는 남배우 기근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접근이었다.

 

‘여배우 기근’, ‘남배우 기근’, ‘여자 배우 기근’, ‘남자 배우 기근’으로 각각 검색했을 때 검색결과 수의 차이 

 

거의 믿을 뻔했다. 여배우가 없다는 곡소리가 울려 퍼진 지 몇십 년 만인 근래 들어서야 조심스럽게 “일이 없다”고 털어놓기 시작한 여배우들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일 주는 사람은 일할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고, 일하는 사람은 할 일이 없어서 고민이란다: 이 모순된 상황은 결국 여배우에게 주어진 ‘여성 전용 테크트리’가 무엇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남성 시청자에게는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이상형이자 여성 시청자에게는 스타일링을 제안하는 트렌드세터로, 극을 환기하는 ‘꽃’으로 기능하던 여배우의 커리어는 30대부터(결혼이라도 한다면 더없이!) 뚜렷한 변화를 맞는다. 동료들이 서서히 잊히거나 이런저런 스캔들로 매장되는 가운데 생존한 여성 배우에게 내던져진 옵션은 재포지셔닝이었다. ‘아줌마’ 전문 연기자가 되는 것. 하이틴 스타 최진실은 ‘장밋빛 인생’에서 뽀글머리를 한 ‘맹순이’로, S.E.S.의 요정 유진은 ‘백 년의 유산’의 씩씩한 이혼녀로, 90년대 절세미녀 김희선은 ‘참 좋은 시절’의 ‘억척 아줌마’와 ‘품위있는 그녀’의 ‘강남 아줌마’로 돌아온다. 기혼 여성 배우는 가정은 물론이고 직장에서마저 누군가의 아내-누군가의 엄마 자리를 채우도록 등을 떠밀리는 것이다. 이에 불응하는 이들에게는 ‘아직도 예뻐 보이고 싶어 한다’거나 ‘까탈스럽게 군다’는 비아냥이, 이에 응하는 이들에게는 ‘드디어 망가짐도 불사하는 진짜 연기자가 되었다’는 응원의 박수가 따라붙었다. 비워진 자리는 또 다시 어리고 예쁜, 어려서 더 예쁜 누군가가 채웠다.

 

공주님 왕관을 씌웠다 벗기기를 반복하면서 여성의 젊음을 수혈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여성 연예인은 위태롭게 커리어를 지속한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법칙이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때 특별대우를 받는 주인공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다. 나이에 따라 여성의 등급을 매길 권한을 가졌으면서도 한편으론 ‘나이를 좀 먹어도 괜찮다’고 격려받는 남성이다. 쓸만한 남배우가 연령대마다 골고루 포진해 있는 반면 쓸만한 여배우는 20대로만 한정되어 있다면, 여배우를 쓸만하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이었던가? 20대를 넘기면 여성은 노처녀, 엄마, 아줌마, 가정부가 되지만, 남성은 선배님, 과장, 부장, 형사, 변호사, 검사, PD, 사장님, CEO, 재벌 2세, 무엇이 돼도 이상하지 않은 드라마 세계는 무엇을 반영하는가? 멀쑥한 중년 남성이 가난한 청년 여성을 구제하는 서사가 과연 누구에게 더 ‘잘 먹히는’ 판타지일까? 여성 작가가 쓴 극본에는 여성의 욕망만이 출력될까? 도장을 찍는 결정권자는 누구인가? 여성 아이돌이 교복이나 부르마를 입고 춤을 추고, 미성년자 연예인의 몸매를 관음하는 눈길이 득실거리는 사회, 연예가에서는 매일같이 삼사십대 남성과 이십 대 초반 여성의 결혼 뉴스가 보도되고,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에서 끈질기게 연애 감정의 단서를 물색하는 사회에는 이미 지시된 방향이 있다. 그런 조류 속에서는 대중매체가 찍어내는 중후한 아저씨와 풋풋한 아가씨의 사랑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거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이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무감각증이 우리 모두를 잠식하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소리를 높여야 한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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