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만에

 

5일만 더 지났으면 블로그 이사하고 정확히 일 년 만에 쓰는 글이 될 뻔했다.

왜 일 년동안 아무런 활동도 없었냐면, 이전 블로그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내가 그곳을 버려둔 사이 들어와 있던 출간 제의를 발견했고 그렇게 책을 쓰기 시작해 완성하기까지 일 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기존에 있던 글을 모은 것도 아니고, 내가 매우 느리게 쓰기도 하고, 한 가지 주제로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써보는 것도 처음이라서 많이 헤맸다. 계약할 때 원고 작성 기간을 육개월로 잡을지 일 년으로 잡을지 선택할 수 있었는데, 2주에 한 편은 쓰겠지 싶어 속도를 내서 해버리자고 6개월을 약속했건만 지금 돌아보면 완전히 똥배짱을 부린 것이었다.

작업 후반부부터는 생활 사이클이 무너져서 불면증이 생겼다. 아침 7시에 자면 잘 잔 것이었고, 잠을 못자니 육아와 가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오전이 가장 고역이라서 정말 쓰레기처럼 육아를 했고 애한테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신경이 날카롭고 몸이 성치 않으니 사소한 일에도 너무 크게 짜증을 냈다. 아이는 혼자 노는 데 익숙해져서 언젠가부터는 아침에 나를 깨우지 않기 시작했다. 가사노동의 강도는 최저선으로 내려갔다. 몸이 덜 축나게끔 되도록 간단한 것만 해 먹었고 청소도 빨래도 더이상 못 견디겠다 싶을 때 한 번씩 했다. 가사노동에 힘을 최소한으로 쓰는 루틴에 익숙해진 건 현명한 일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잠이 인간에게 이렇게 중요한 것인 줄 몰랐다.

5월 이후로 커피와 차를 줄이고, 밤에 잠 오면 자고, 잠 안 오면 멜라토닌 보충제를 먹으면서 생활이 좀 개선되었다. 요즘은 애랑 밖에 더 많이 나가고 집에서도 스크린 타임을 줄이고 인터랙션하는 시간을 늘이려고 노력 중이다. 그동안 호주는 겨울이 되어버려서 야외활동이 여의치 않게 되었지만, 실내에서도 할 수 있는 활동을 새롭게 찾아 보려고 한다. 트위터에서 한국 여성 양육자들의 육아 얘기를 읽으면, 대개 열심히 노력하고 또 굉장히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나와 누군가를 비교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헐렁한 주양육자는 나뿐인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 것도 이 깊은 죄책감의 한 원인인 듯하다.

지금은 저자로서 할 일이 끝났다. 7월 중순까지는 아이에게 에너지를 좀 더 많이 쓰고 나를 위해서 실컷 놀 계획이다. 일 년 동안 모든 면에서 너무 여유가 없어서 원고와 관련된 콘텐츠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뽑아내기만 하고 입력되는 것은 없는 상태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고, 쓰고 싶은 글이 생겨도 밀린 일에 쫓기고 있었기 때문에 쓸 수가 없었다. 늘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시달리는 성격이라서 벌써 불안해지려고 하지만 이 불안감을 참고 나 자신에게 물을 주어야 한다. 출산 이후로 조금씩 글 팔아서 번 돈 다 학자금대출에 부어 왔는데 이젠 모르겠고 계약금 받은 거 다 책 사고 영화 보는 데 쓰련다(눈물…..).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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