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엄마들 BROKEN MUMS (3): 웹툰 〈남의 부인〉, 그 남자의 진짜 파트너는 누구인가

나만 바라봐

‘친구 없는 남자’.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으로 친구 없는 남자를 꼽는 여자들을 왕왕 본 적 있다. 낮은 술자리 빈도, 퇴근하면 칼 같이 귀가, 괜히 바람이나 넣는 허풍선이들 차단, 나를 남자들 친목 모임에 끌고 나갈 일도 없는, 그토록 ‘가정적인’ 남자와의 결혼생활은 비교적 수월할 거라고 말이다. 여자들은 남자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한 덩어리로 반죽하는 꿈을 꾸는 것일까? 여자의 마음 속에 ‘심어진’ 사랑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다.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이자 가족이 되어, 그의 전부로 화하는 것. 그것이 도달할 수 있고 도달해야만 하는 사랑의 최고 경지라고 세상은 여자들의 귀에 대고 고함을 쳐 대니까. 여자들은 목표물을 감지했다면 제도를 이용해 재빨리 서로를 서로에게 귀속시키라고도 배운다. 단체생활, 경제공동체, 육아파트너십이기보다, ‘사랑의 정수’를 실현하는 결승선으로 신화화된 결혼은 늘 여성의 -강요된- 최종 목적지로 묘사된다.

반대로, 어떤 남자가 ‘친구 없는 여자’를 이상형이라 떠들고 다닌다고 가정해 보자. 연애에 좀 식견이 있는 여자라면 입을 모아 “도망쳐!”를 외치리라. 지금은 꽤 잘 알려진, 데이트폭력과 연인 간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수법 중 하나는 여성을 외부 세계와 연결시키는 다리를 끊어 놓는 것이다. 여성을 가족, 친구, 동료, 모든 대외 활동으로부터 고립시켜서, 남자의 폭력성이 수월하게 침투할 수 있는 빈 땅으로 만들 속셈이다. 물론 여자도 연인의 인간관계에 가위를 들이댈 때가 있다. 기껏해야 나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성매매를 하거나, 술을 너무 먹거나 … 따위의 꺼림칙한 친구들을 멀리해 달라는 부탁이지만, 어지간히 말 잘 듣는 남자라도 이런 요구에 응하지는 않는다. 만나도 안 만난 척하고, 갖은 핑계를 대 자리에 나가고, 네가 날 화나게 하니 나도 너를 실망시키겠다는 식으로 합리화해서라도, 그들은 비밀스러운 우정을 지속할 것이다.

남자들은 사랑이 인생의 기적이고 결혼은 그 기적 중에서도 절정의 순간이라고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애 밖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를 일괄적으로 몇 단계씩 평가절하해야만 완성되는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여성 전용이다. 이것이 대인관계를 통제하는 갈고리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잘 박히는 이유다. 남자는 여전히 수많은 인생의 리소스를 유지 및 관리하고 싶어하지만, 사랑이 일생일대의 진귀한 보물이라고 믿어 온 여자는 모든 것을 다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다. 그가 만나지 말라는 친구는 만나지 않고 그가 나가지 말라는 자리는 나가지 않는 게 대수인가? 그가 나의 전부이듯이, 나 역시 그의 전부가 되면 ‘이 정도’ 손실은 충분히 상쇄될 텐데.

나는 너, 너는 나!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이 환상적인 미래를 담보하겠다며 여성이 결혼으로 걸어 들어오도록 손짓한다. 물론 여자들이 결혼을 선택하기만 하면 바로 뒤통수를 칠 준비도 되어 있다. ‘누구 와이프’가 되고 나면, 여자들이 배신감에 치를 떨 순서다. 사회가 여자에게 써준 결혼 계약서와 남자에게 써준 결혼 계약서가 조금, 아니, 상상 이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날인했으나 내용은 딴판인 두 계약서 앞에서 여자의 분노는 점점 체념으로 변한다. 결혼생활에서 사랑의 이데올로기가 약속한 가치를 받아내려는 여자는 ‘과도한’ 요구를 한다는 비판을 받게 마련이니까. 예민하고 집착하고 구속하는 여자, 군림하면서도 피해의식에 빠진 여자, 가정을 감옥으로 만들어 남자를 밖으로 나돌게 하는 미친 여자가 되었다고.

* 이 글에는 웹툰 〈남의 부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단하신 우정

웹툰 〈남의 부인〉의 주인공 이인희는 유능한 직장 여성이’었’다. 알 만한 회사의 마케팅 부서 대리, 차기 인사고과의 강력한 승진 후보이자 LA 해외지사 발령을 목표로 힘차게 달리는 워커홀릭. 그런 인희가 지금은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있다. 상담의와의 면담에서 그는 독특하게도 이 파국의 원인제공자로 남편 호연도 시가도 아닌, 남편의 친구 윤철을 지목한다. 윤철이 결혼 전부터 호연을 친구 이상으로 좋아해 왔고, 그래서 인희를 교묘히 따돌리고 괴롭혀 미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상황은 인희에게 불리하다. 인희의 정신 상태는 불안정하고, 그에게는 범죄 경력도 생겼다. 윤철과 호연은 똘똘 뭉쳐 자신들의 과실을 부정하고, 때로는 독자가 판단하기에도 인희의 적대감이 도를 넘는다. 누가 귀담아듣겠는가? 어떤 기혼여성이 호소해도 과대망상이라고 비웃음 당할 소릴 말이다.

그럼에도 인희가 아주 터무니없는 공상에 빠진 것 같지는 않다. 인희가 재구성한 과거의 타임라인에 따르면, 윤철과 호연의 관계에는 정말로 묘한 구석이 있다. 맞선으로 만난 호연은 “나무랄 데 없는” 남자였다. 입봉을 앞둔 영화 촬영 조감독, 외모도 반반하고, 성격도 무난하고, 시가도 까탈 부리는 데가 없었다. 모든 게 일사천리인 와중에도 인희는 여전히 윤철을 모르고 있었다. 결혼 전 호연의 친구들을 소개받는 자리에서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다. 윤철은 때마침 실연의 슬픔에 빠져 있다고 했다. 오랜 짝사랑 상대에게 고백도 못해보고 청첩장을 받았단 거다. 모두에게 금시초문인 사연이었다. 남자들은 “소름 돋게 일치하는 정황”에 호연이 얘기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지만, 이 농담이 인희에게는 별로 유쾌하지가 않다.

명성만 자자할 뿐 결혼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윤철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신혼집에 쳐들어왔다. 실연 여행인지 공부 목적인지 유럽에 갔다 왔다더니 그 몇 달 간 호연을 되찾아 올 계획만 세웠나 싶다. 웃는 낯으로 남편 좀 ‘빌려’ 가겠다며 인희에게 양해를 구하곤 하는 윤철은 인희가 없는 자리에서는 호연을 ‘마누라’라고 부른다. 영화에는 취미도 없었으면서 호연의 동대학 동학과에 따라와 영화 감독이 되었다는 그의 애착에는 확실히 유별난 구석이 있다. 윤철은 술에 취하면 호연의 메신저 창을 사랑 고백으로 도배한다. “호연이의 인생을 제가 다 압니다”라는 윤철의 넉살은 어쩐지 과시처럼 들린다. 윤철과 호연 사이에는 쉴 새 없이 추억 상자가 열리고, 이 끈적끈적한 우정의 무대에서 인희는 자꾸만 방청객이 된다. 그러나 인희조차도 그들의 우정이 기분 나쁜 이유를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유난을 떠는 ‘의리남’들에게 이 정도는 예사니까. 그렇지 않은가, 남성 동성 간 애정행각은 절대 유성애 코드로 해석될 수 없다고 집단 세뇌를 받은 한국 남성의 호모포빅-호모소셜에는 꼭 ‘오버’를 하는 놈들이 출현한다.

그뿐이었다면 윤철은 싫지만 참을 수는 있는 남편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윤철은 인희에게 돈이라는 다른 폭탄도 선물했다. 윤철은 호연을 자신의 차기작 촬영 감독으로 합류시킨다. 호연이 소속돼 있던 회사를 나오고, 유명 감독의 협업 제안도 거절하고, 외주 작업까지 전면 중단하면서, 기약 없는 저예산 영화 프로젝트에 몰두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하룻밤. 의리인지 커리어인지, 아무튼 윤철이 등장하면서 호연의 우선순위는 바뀐 것 같다. 외벌이가 되었으니 일터에서도 더 두각을 보여야 하는 인희의 압박감은 호연에게 남의 얘기다.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몸을 혹사시켜도 잠이 안 온다. 잠을 못 자니 퍼포먼스가 떨어진다. 인희는 정신과를 찾는다. 그의 고충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의사는 졸피뎀을 처방한다.

두 가지 트랙, 두 마리 토끼

〈남의 부인〉의 인희는 K-정상성에 순응하는 인물이다. 부모가 연결해준 사람과 적당히 결혼을 했고, 헬조선 기업 문화에서도 경쟁력을 과시한다. 아직 때가 아닐 뿐 출산 계획도 있었고, 아이는 미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키울 생각이었다. 인희는 남편 팔자가 아무리 늘어져도 바가지 긁지 않는 ‘쿨’한 아내도 되어야 하고, 잘한 결혼 못한 결혼에 입방아를 찧는 동성친구들 사이에서 ‘괜찮은 결혼’을 한 사람으로도 보여야 한다. 우리는 직업적 야망도 포기할 수 없고 기혼여성으로서도 제 몫을 다해야 하는 인희의 목표의식에 제법 어울리는 단어를 안다. ‘슈퍼맘’.

그러나 육아에 힘쓰는 유자녀 기혼여성은 “구멍 사원”으로 전락하고, 일에 힘쓰는 유자녀 기혼여성은 ‘매정한 엄마’라고 비난하는 한국에서 두 개의 공을 완벽한 균형감으로 저글링하는 슈퍼맘은 실재하는가? 이 덧없는 찬사는 자기를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사회에서 생존해 온 여성이 투 트랙, 쓰리 트랙을 뛰도록 부추기는 트랙 밖의 목소리다. 주변인들은 미래 구상이 치밀하고 매사에 빈틈없으며 성공지향적인 인희를 완벽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워낙 많은 사람이 노랠 불러 대기 때문에 인희조차도 이 같은 호명에 둔감하지만, 인희의 완벽주의에는 그가 ‘과잉성취’형 여성이라는 밑바탕이 있다. 그는 남들 몇 배의 성과를 보여야만 열외를 면할 수 있는, 여성이므로.

야근, 과로, 자발적 자택근무까지, 인희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무엇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규 리그’에 진입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도, 그는 여전히 ‘여자 리그’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희의 승진 라이벌은 인희가 고꾸라질 틈만 노리는 여성 입사 동기고, 남성적 커뮤니케이션 스킬(술자리!)에 집착하는 여성 상급자는 인희도 자신의 ‘성공 비결’을 뒤따라 증명해 주길 원한다. 팀원의 출산휴가가 팀워크에 해를 끼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동료들 틈에서 인희는 반드시 완벽하게 계획된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리고 〈남의 부인〉의 세계에 인희의 상황을 인희의 성별과 엮어서 해석할 능력이 있는 인물은 없다. 인희조차도 남들 사는 모양이 다 그렇고 그렇지 않냐고, 이 ‘헬’을 뜨기만 하면 한 템포 쉬어 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남의 부인〉은 젠더 문제를 배제하면 그저 졸피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웹툰으로 남는다. 물론 작품에 공익적 목적이 없지는 않다. 중독성 강한 향정신성 의약품이라는 사전 지식도 없이, 잠을 자야 하는 인희는 잠이 잘 오니까 약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졸피뎀을 절대 술과 함께 복용하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는 인희의 근무 환경에서 지켜질 수가 없다. 졸피뎀 부작용인 이상행동이 시작된다. 수면 중 주행, 문자 보내기, 폭식, 폭언과 폭행 등 인희는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갖가지 아찔한 사고들을 친다. 작업 능률은 떨어지고 대인관계도 흔들리지만 약을 끊을 수도 없는 인희는 이 고민을 배우자에게도 비밀에 부친다. 호연은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인희가 상상하던 빛나는 미래는 산산이 부서진다. 이 난장 속에서 인희에게 “아기 천사”가 찾아오고 만 것이다.

결혼이 여성에게 약속한 미래와 남성에게 약속한 미래가 다르고, 늘 후자가 전자를 이긴다는 것. 인희가 결혼 계약의 기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인희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완벽하게 구상한 청사진은 ‘계획하지 않은 임신’, 단 한 방이면 휴지조각이 된다. 호연에게는 처음부터 인희처럼 발을 동동 구를 이유가 없었다. 성격이 순해서가 아니라, 자격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토록 결정적인 리스크가 그의 인생 경로에는 존재한 적 없기 때문이다. 윤철의 영화가 망하더라도 호연은 그가 아는 남자들과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커리어, 그리고 자아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다. 인희의 경력단절은 호연에게 가장이라는 훈장을 달아줄 테고 이 훈장은 호연의 돈줄이 될 것이다. 인희처럼 능력 있고 착실한 여자를 ‘망가뜨린’ 것은 졸피뎀인가, 결혼인가, 아니면 인희의 진술대로, 윤철인가?

결혼하지 말아야 할 여자, 결혼하지 말아야 할 남자

호연과 윤철의 관계가 우정인가 사랑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남자들의 우정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인희가 본심을 나누려 할 때 윤철은 정말로 귀담아듣지 않는다. 대화의 열정은 윤철과 자신의 직업을 비호할 때만 발동하며, 인희에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단답으로 일관하는 호연에게 인희는 정서적 교류의 대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호연이 그의 인생과 영혼을 공유하는 사람은 윤철이고, 호연에게 인희는 정상성을 구현하는 통로일 뿐이다. 그는 여성과의 결합으로 이성애자로서의 정상성을 획득하는 한편, 동성집단과 보다 긴밀히 교류함으로써 남성으로서의 정상성도 강화한다(그리고 전자는 후자에 가산점을 더해주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포섭되어 있다). 인희가 두 남자 사이에서 느끼는 불쾌감은 여성이 배운 ‘관계의 본질’에서 소외된 자기 위치를 발견하는 데서 온다.

여자는 목마르고 남자는 배부른 결혼생활의 사정은 여성에게도 동성집단이 정서적 자원을 향유하는 배타적(!) 공간으로 주어져 있다면 좀더 나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듯이, 〈남의 부인〉에서 묘사하는 남성 동성 모임과 여성 동성 모임의 분위기도 판이하다. 인희는 종종 호연의 친구 모임에 초대되지만, 남자들은 인희를 그 자리에 ‘앉혀’ 놓았을 따름이다. 대화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인희는 말이 서툰 것도 아닌데 홀로 외국인 같다. 반면 인희의 동성친구들이 남자를 악세서리마냥 끼워서 모임을 꾸리는 일은 없다. ‘처음엔 걱정해도 일단 낳으면 다 하게 되더라’고, ‘아이 낳고 이모님 써가면서 일할 이유가 없다’는 주변 동성 인물들은 인희의 K-정상성에 균열이 일어나려는 순간에마저 뒷걸음질치도록 어깨를 떠민다.

남성 집단에서 남성성을 인정받는 것이 너무나 소중한 인생의 가치이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 겠다는 의리남은 정말로 피곤한 존재다. 여자들이 ‘친구 없는 남자’를 찾는다면 사랑의 이데올로기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의리남의 여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모멸적인 일인지 미리 직감했거나 이미 체험했기 때문이다. 남자 식 사랑 이론에서 정서적 교류를 사랑으로 완성시키는 마지막 재료는 성교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리 순도 높고 진실하며 낭만적인 감정이라도 그것이 이성애자 남성 집단에서 교환된다면 사랑이 아니며, 그 모든 기쁨에서 제외된 여자도 나와 섹스를 하기만 하면 내가 사랑하는 상대라고 주장한다. 마치 의리, 우정, 신의, 충성, 존경, 배신감, 증오 등 온갖 감정으로 얽히고설킨 남자들이 우글대는 ‘알탕 영화’에서 여자는 창녀나 임신한 아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순진한 연인으로만 등장하는 것처럼. 그러나 바로 그러한 관계로, 여성 관객은 이성애자 남성이 우글거리는 영화에서마저 ‘브로맨스’를 읽어내고 열광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호연이 ‘괜찮은 남편’이라는 평가는 절대 틀렸다(〈남의 부인〉 독자 댓글창에는 호연을 비난하는 여론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호연을 감싸주는 -남성 독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꼭 한둘은 등장한다). 그는 인희가 왜 그토록 분투하는지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인희와 말이 통할 수 없다. 커리어의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 그것도 인희의 경제력을 보험으로 삼아, 고작 반 년을 투자한 비자발적이고 그마저도 반쪽짜리였던 주부 생활은 호연에게 퍽 굴욕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인희 입에서 나온 “집에서 논다”는 표현을 두고두고 담아뒀다가 반격의 무기로 삼고, 인희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자 “네 기분 띄워 주려고 광대짓”을 했다며 역정을 낸다. 호연은 확실히 인희가 집에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가족의 삶”과 “직장에서의 목표” 중 뭐가 중요하냐며 저울질을 시키던 호연은 인희가 정신건강 악화와 임신으로 회사를 떠나자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듯 흐뭇해한다. 그러나 막상 “집에서 노는” 인희는 호연에게 지겨워지게 마련이고, 이제는 인희도 더이상 ‘쿨’한 와이프일 수가 없다. 이 갈등은 결말부에 이르러 인희를 어떤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인희는 결혼하지 말았어야 한다. 호연도 결혼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는 결혼하는 게 ‘정상’이라서 결혼하지 말아야 할 남자도, 결혼하지 말아야 할 여자도 너무 많이 결혼한다. 〈남의 부인〉은 이 결혼하지 말아야 할 여자와 남자가 만났을 때 한 쪽의 삶이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양쪽 다지만 벌 받는 쪽은 여성인, 용납할 수 없는 기울어짐은 결혼이 남성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는 증거다. 불행 중 다행은, 이 K-정상성의 비정상성을 이야기하는 여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남의 부인〉의 글작가 해다란은 전작 〈어른스러운 철구〉까지만 해도 남성의 군 복무 이슈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1] 그런 그가 2018년에 이르러서는 〈남의 부인〉 같은 작품으로 사랑과 결혼의 미묘한 부조리를 파헤치게 되었다. 여성이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 인희가 지금 우리 시대의 여성이었다면, 그 또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언어와 그 언어를 응원하는 동성 친구들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으리라.



[1] “그 당시에는 군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그런데 아무리 군대 다녀온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짜내도 직접 경험한 사람만큼 이야기할 수 없겠더라. (…) 우리나라는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기 때문에 군 체질이 아닌 사람조차 강제로 가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유를 억압당하는 것은 내게 대단히 무서운 일이고 그래서 내가 남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남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네이버캐스트, “웹툰작가 해다란: “내 이야기를 대화로 풀어내는 대신 만화로 표현한다”, 2013. 08. 15,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6954&cid=59121&categoryId=59121)

.

관련글

부서진 엄마들 BROKEN MUMS (0): 들어가며

부서진 엄마들 BROKEN MUMS (1): 〈툴리〉, 육아 외주 공포

부서진 엄마들 BROKEN MUMS (2): 〈유전〉, 가부장제 컬트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Leave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