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 분열하는 디바

원더걸스, 〈I FEEL YOU〉 MV

놀라운 소녀들의 역사

원더걸스는 다사다난했다. 2007년, 〈아이러니〉로 데뷔한 원더걸스는 반 년도 안돼 주목받는 멤버였던 현아를 떠나보낸다. 어수선한 가운데 유빈으로 현아의 자리를 대체한 원더걸스에게 〈Tell Me〉는 ‘로또’였다. 〈Tell Me〉 신드롬, 그리고 〈So Hot〉과 〈Nobody〉의 연이은 히트는 원더걸스의 명성을 ‘국민 그룹’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JYP 엔터테인먼트는 원더걸스의 커리어가 가장 빛나던 시기에 해외 진출이라는 악수를 둔다. 아마도 박진영의 숙원이었던 이 야심찬 계획은 별다른 소득 없이 2년 간의 국내 공백만을 남겼고, 선미는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 혜림을 새 멤버로 영입하고 귀향한 원더걸스는 전성기의 리듬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2 Different Tears〉(2010), 〈Be my baby〉(2011), 〈Like This〉(2012) 등 연례행사처럼 공개된 활동곡들의 성적은 영광의 시절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쳤다. 이후 더 긴 공백기가 시작되었다. JYP가 ‘3대 기획사’로 세를 겨루게 된 시금석이 원더걸스였음을 생각하면 고달픈 말로로 보였다.[1]

그중에서도 선미의 이력은 특이한 편이다. 원더걸스가 기약 없는 휴지기를 가지는 동안, JYP는 연예계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선미를 솔로 가수로 복귀시켰다. 박진영은 박지윤에게 〈성인식〉(2000)을 주었던 것처럼 스무 살을 갓 넘긴 선미에게 〈24시간이 모자라〉(2013)를 주었다. 원더걸스 데뷔곡 〈아이러니〉 당시만 해도 다소 꾸민 듯한 저음이었던 선미의 보컬은 속삭이는 듯한 떨림이 있는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연상시키는 똑 단발을 흠뻑 적시고 맨발로 무대에 오른 선미의 퍼포먼스는 저돌적이지만 묘하게 경직되어 보였다. 〈24시간이 모자라〉는 여성의 ‘첫경험’을 욕망하는 한국 남성의 상상력을 고스란히 이식한 곡이었다. 성에 갓 눈떴지만, 소녀 태를 아직 다 벗지 못해서 ‘더’ 매력적인 여자 연기는 연예계를 들썩거리게 했다(당시 대중보다 TV에 나오는 남자 예능인들이 이 노래와 안무와 콘셉트에 더 열광했다고 느꼈다면 착각일까?).

이듬해 두 번째 싱글 타이틀곡 〈보름달〉도 무난히 인기를 끌면서 선미의 브랜드 가치는 원더걸스의 그것보다도 높아진 듯했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선미는 그룹의 품으로 돌아간다. 2015년, JYP는 소희와 선예의 공식 탈퇴와 선미의 재합류를 발표했다.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조합의 4인조 밴드로 그룹색을 재정비한 원더걸스는 세 번째 정규앨범 〈REBOOT〉를 내놓는다. 디스코와 뉴잭스윙 사이 어드메의 -80년대 ‘프리스타일’ 장르- 노스탤지어를 수려하게 재현한 곡들로 꼭꼭 채운 이 앨범은 한마디로 ‘물건’이었다. 장르 해석의 깊이나 음반 전체의 완성도도 뛰어났지만, 앨범의 주역이 박진영이 아닌 원더걸스였기 때문에 더 놀라웠다. 타이틀곡 〈I FEEL YOU〉를 제외한 모든 트랙의 작사ㆍ작곡ㆍ 편곡에 멤버들이 고르게 이름을 올렸다. 골방에 갇힌 여자들이 이를 악물고 갈아낸 칼날처럼 날렵한 이 앨범은 원더걸스의 새로운 미래처럼 보였다. ‘리부트 원더걸스’는 후속작 〈WHY SO LONELY〉로도 호평을 받으며 〈REBOOT〉가 요행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이것이 원더걸스의 마지막이라고 상상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이었다. 

원더걸스, 〈WHY SO LONELY〉 MV

여돌은 왜

H.O.T.가 아이돌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기를 쓰던 1세대부터 ‘아티스트로 진화하기’는 보이그룹의 업적 달성 목록에서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이 전통 속에서 수많은 보이그룹 멤버가 수없이 자작곡을 선보였고, 싱어송라이터로 업그레이드된 그들의 자의식은 이미 충성도 높은 팬덤을 다시 한 번 매료시키는 미끼가 되었다. 고가 악기가 팬들의 ‘조공’ 리스트에 포함된 역사도 길고, 아이돌 리얼리티 쇼에서 노출되는 작업실 풍경이 낯설지 않다. 돌아가는 판이 이렇다 보니 보이그룹의 아티스트 생체시계도 꾸준하게 앞당겨졌다. 커리어가 궤도에 오를 즈음 자급자족을 시작하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애초부터 작사 작곡이 가능한 멤버를 끼워 그룹을 기획하는 경향도 생겼다. 그런데, 여자는?

걸그룹 출신 여성 아티스트가 자신의 생각, 자신의 욕구를 작품에서 실현하려면 정말로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이효리나 보아, 효연, 앰버 쯤은 돼야, 그러니까 업계 최정상의 인지도를 얻고도 대선배 대접을 받을 만큼 장수해야 여자들은 조심스럽게 속내를 열어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절대 다수의 걸그룹에게는 이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연예계는 시간제한 회전초밥집에 앉은 사람처럼 여성 아이돌의 젊음을 허겁지겁 소비하고 ‘한철 장사’로 치워 버리기 일쑤이니까. 데뷔와 동시에 전소연의 자작곡으로 트랙을 채우고 활동해 온 걸그룹 ‘여자아이들(G-idle)’은 정말이지 희귀한 사례인데, 걸그룹 시장에서는 그 정도 나이에 그 정도 실력으로 자기증명이 가능해야만 한몫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입이 쓰다(게다가 ‘프로듀스101’ 방영 당시 대중은 이 재능 있는 여자아이를 얼마나 미워했던가?).

그러나 걸그룹 출신이라고 ‘자기 색’ 찾기에 관심 없을 리 없다. 인터뷰를 스쳐 보기만 해도 음악적 갈증을 표현하는 멤버들은 늘 있고, 연차가 쌓여 슬슬 작곡과 작사에 눈을 돌리는 멤버들도 늘 있어 왔지만, 걸그룹의 진화는 어쩐지 그만한 관심이나 푸시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보이그룹 서사의 골자가 어느 정도 시간과 정비례하는 ‘원숙함’과 ‘성장’인 반면, 늘 어리고 늘 새롭고 늘 신선한 무시간적 항상성만이 존재하는 걸그룹의 서사에는 성장한 목소리가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극한직업으로 손꼽히는 걸그룹이 그 절대 무해한 미소 뒤에 어떤 꿈을 감추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태연이 〈SOMETHING NEW〉 뮤직비디오로 연예인 되기의 피로함을 이야기하고, 수빈이 달샤벳 시절과는 전혀 다른 음색으로 〈KATCHUP〉을 노래할 때 느끼는 찌르르한 감정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국인은 너무 진지한 생각을 하는 여자를 싫어하기도 한다. 그 여자들이 ‘아티스트적 자의식’을 표출한다면 더더욱. 

원더걸스의 해체는 나에게 약간의 슬픔, 허탈감, 무기력감을 가져왔다. 멤버들의 음악적 기량이 절정에 오른 바로 그 순간, 작사ㆍ작곡ㆍ편곡ㆍ프로듀싱이 가능하면서 시장의 인정도 받은 국내 유일의 걸그룹으로 성장하는 동시에 원더걸스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이제 한 그릇에 담기기에 각각이 너무 ‘거물’인 탓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네 명은 각자도생하기로 했다. 유빈과 혜림은 각각 솔로 가수와 방송인으로 JYP에 잔류했고, 선미와 예은은 아티스트로서 보다 큰 자율성을 찾아 새로운 둥지로 향했다. 이중에서 지금까지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멤버는 선미다. 그리고 그 선미는 걸그룹의 성숙하고 엉뚱한 막내 선미도, ‘소녀’에서 ‘여자’가 된 뮤즈 선미도, 걸밴드의 고혹적인 베이시스트 선미도 아니었다. 

선미, 〈가시나〉 MV

The Good, The Bad and The Crazy 

이미지로 분류하면 솔로 가수 선미는 한국 가요계에서 선호하는 여성상의 어느 틀에도 딱 맞지 않는다. 걸그룹 출신이지만 몽환적인 소녀성이나 소녀적인 싱그러움을 표방하지도 않고, 고음과 성량으로 ‘찢는’ 가창력 퀸이나 퍼포먼스에 강한 섹시 디바도 아니다. 선미는 ‘이상한 여자’다. JYP에서 독립한 선미의 첫 솔로곡 〈가시나〉 뮤직비디오는 이 이상한 여자의 출사표였다. 선미의 얼굴에는 예쁘게 봐줄 필요 없단 듯 게슴츠레한 무표정과 예뻐해 달란 듯 상큼한 미소가 점멸한다. 그는 케이팝 댄스도 무용도 아닌 ‘막춤’으로 화면을 휘젓고 다닌다. 소파에 ‘쩍벌’ 자세로 앉고, 시청자에게 엿을 먹이고, 성큼성큼 쫓아와 카메라를 뒷걸음질치게 하는가 하면, 탈의하는 실루엣을 자세히 비추며 자신의 몸을 ‘먹잇감’으로 던져주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분열적으로 인식하고 재현하는 선미의 태도는 ‘WARNING’ 3부작 프로젝트, 즉, 〈가시나〉 〈주인공〉 〈사이렌〉과 부록격의 디지털 싱글 〈누아르〉 뮤직비디오를 쭉 관통하고, 이로써 거리에서 들려올 법한 사랑 노래 가사에 자전적인 뉘앙스를 입힌다. 〈WHY SO LONELY〉의 레게 리듬이 흐를 것 같은 나른한 톤을 배경으로 〈가시나〉 뮤직비디오 도입부에서 선미는 카페에 혼자 앉아 있었다. 초조한 선미의 앞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잠시 드리웠다 사라지고, 길가의 흰 세단이 떠나자 선미는 무아지경의 춤을 춘다. 실내 공간을 이동하며 술을 마시고, 입지 않을 옷더미에서 뒹굴고, 카메라를 쫓아 버리기도 하던 그에게 욕실은 터닝 포인트다. 욕조는 꽃길을 가로질러, 지금까지 지나온 공간들을 차례로 거슬러, 오프닝 장소인 카페로 선미를 ‘데려다’ 놓는다. 무대 의상을 입고 백업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는 선미는 애인을 기다리는 여자 같기도 하고, 면담을 기다리는 아이처럼도 보였던 최초의 선미와는 달라져 있다. 

선미, 〈주인공〉 MV

좌절-성장-귀환 구조의 〈가시나〉 뮤직비디오는 배신, 이별, 극복 의지가 주된 정서를 이루는 가사를 ‘JYP 퇴사자’의 이야기로 읽을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자의 반 타의 반일지라도 어쨌든 선미는 연예계에 돌아오기로 했다). 이렇듯 암시성이 강한 선미의 뮤직비디오들은 〈가시나〉에서 사용한 주요 모티프를 재활용하며 의미 연결을 시도한다.  대표적으로 흰 세단은 〈가시나〉와 〈주인공〉을 이어주는 고리다. 〈가시나〉 클로징에서 선미는 그를 버리고 떠났던 흰 세단을 꼭 닮은 자동차를 발견한다. 〈주인공〉으로 넘어오면 차는 선미의 것이 되어 있다. 선미는 운전석에 앉아있다가 차에서 내린다. 앞 공터에 세워진 빌보드 광고판은 비어 있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무대를 이동하며 퍼포먼스에 열중하는 동안, 어느 새 빌보드에는 선미의 얼굴이 아름답게 인쇄된 대형 광고가 걸렸다. 선미는 물줄기를 뚫고, 넘어져가며 빌보드 쪽으로 다가간다. 그는 사진 속 자기 자신을 올려다보곤 광고판을 향해 총을 쏘는 제스처를 취한다. 등을 지고 나면 빌보드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선미, 〈사이렌〉 MV

〈주인공〉을 통해 어렴풋이 내비친 그 괴리감, 시선의 대상이 되느라 ‘나 자신이 아님에도 내가 되어버린 어떤 얼굴’을 목도한 선미의 자기혐오적 감정은 〈사이렌〉에서 고조된다. 〈사이렌〉 뮤직비디오의 기본 구조는 파란색으로 대표되는 ‘자연인’ 선미와 붉은색이 상징하는 ‘연예인’ 선미의 대립이다. 선미의 집 ‘욕조’에서 태어난 크리처-선미는 일상 속 선미를 쫓는다. 뻔뻔한 얼굴로 춤을 추는 붉은 선미는 파란 선미를 역겹게 한다. 파란 선미는 붉은 선미로부터 달아나려 하지만, 집 방문을 열 때마다 또 다른 ‘불쾌하고 아름다운’ 선미들을 마주치게 된다. 새장이나 인어 같은 노골적인 메타포로 구속과 억압, 부자유 상태를 비유한 〈사이렌〉은 여성 연예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이야기 중 하나 같았다. 어쨌든 〈사이렌〉의 결론은 이 두 가지 분열적 자아의 화해다. 자연인 선미가 연예인 선미를 받아들이고 나면, 방 안에 주저 앉아있던 선미들도 조금씩 다리를 쓸 수가 있다. 그것이 ‘어차피 이 집에서 나갈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은 선미가 선택한 생존의 방향이리라.  

선미,  〈누아르〉 MV

And the Naughty

선미가 표현하는 환멸과 양가감정의 순간들은 ‘보여지는 것’이 직업인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누아르〉 뮤직비디오를 〈사이렌〉의 연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누아르〉에서 선미는 ‘관심 받기 위해서라면 어떤 미친 짓도 하는 여자’를 연기하고, 그 ‘미친 짓’이란 자해의 행진이다. 공식적으로는 ‘SNS 중독’이 주제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같은 서사도 여성의 몸에 투영하면 더 복잡한 레이어가 겹쳐지게 된다. 사랑받아야만, 더 많이 사랑받아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은 곧잘 자기파괴를 불사하니까. 그것이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지는 그대로 쇠침이 촘촘히 박힌 판 위에 뛰어내리거나 전신에 물을 끼얹고 전깃줄을 잡는 행위일 필요는 없다. 현대 여성이 ‘사랑받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아프게 하는지 따로 구구절절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 스타에게는 이것이 생계의 일부란 것도. 

소셜미디어 셀렙과 연예인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는 가운데 〈누아르〉를 자전적 이야기로 읽지 못할 이유는 없다. ‘SUBSCRIBE’와 ‘LIKE’를 적은 양 손바닥을 펴보이는 선미의 몸은 절박하게 떨리고, #공감 #소통해요 따위의 해시태그가 걸린 화면 속 선미의 눈 흰자위는 충혈되어 있다(선미는 줄곧 커리어를 의미했던 ‘흰 세단’이 불타오르는 현장에서도 셀피를 찍는다. 나의 몰락까지도 이야깃감으로 만들 각오가 되어 있단 듯이!). 카메라 안팎에서 충돌하는 자아에 대한 선미의 고뇌는 〈WARNING〉 앨범 수록곡 〈BLACK PEARL〉의 가사에서 완전한 본체를 드러낸다. “더럽고 아픈 걸 감싸고 감싸 내 난 / 추한 까만 빛이 못 새어 나오게 난 (…) 근데 넌 이 안에 뭐가 든지도 모르고 / 그저 예뻐라 예뻐라 / 그저 곱구나 곱구나 / 그저 빛이나 빛이나 / 뭐가 그리 좋은지”

선미, 〈날라리〉 MV

아이러니하게도 〈사이렌〉에서 분열된 자아를 화해시키고 ‘WARNING’ 시기를 졸업한 선미의 후속작 〈날라리〉는 오히려 구태의연해졌다. 단순하게 보면, 월드 투어 중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더 넓은 세계를 향한 포부를 담은 듯하다.[2] 첫 장면에서 선미는 제 몸을 가둬 뒀던 수트케이스에서 기어나온다. 화면에 한 번 빛이 들자 가발이 씌워진다. 선글라스를 쓰면 선미의 착장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베낀 여자가 두 명 따라붙는다. 스타일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선미를 빼다 박은 ‘추종자’는 점점 불어난다. 여자들은 선미가 들어간 미용실 창문에 달라붙어 있고, 비행기 기체와 승객들은 선미가 지휘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며, 선미는 수백 개의 똑같은 여자-마네킹들 사이에서 유일하고도 가장 높은 존재로 부상할 것이다. 

선미도, 원더걸스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감독 룸펜스도, 재현의 윤리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모르겠다.[3] 〈날라리〉 뮤직비디오가 구태의연하다고 평가한 것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업계의 관성적 연출이 유독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의 성인지 감수성으로는 액자 속에 ‘대형 나비’로 박제된 여성의 모티프, 익명의 여성 일반을 묘사하는 소품으로서의 ‘마네킹’을 긍정적인 기호로 읽어내기 어렵다. 선미가 여성의 인플루언서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가 표방하는 이상이 지금 시대의 진취적 여성상과는 충돌할 때, 이 자가당착적 인상은 메시지의 약화를 불러온다. 앞서 〈사이렌〉, 〈누아르〉  같은 뮤직비디오의 긴장은 이미지와 메시지 간의 대등한 알력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날라리〉에 오면, 메시지의 긴장이 휘발되면서 상업적 이미지만이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가사 쪽이라 해야 하겠다. 헤이터를 의식한 듯한 〈날라리〉의 가사는 청자가 여성이라고 가정하면 상당한 긴장감이 생긴다(우연찮게도 〈날라리〉 뮤직비디오에서 선미를 ‘따르거나’ ‘따르지 않거나’ 하는 몸들은 절대 다수가 여성형이다). 지금껏 선미의 행보는 일부 여성 사이에서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해 왔다. 〈가시나〉의 홍등가를 연상시키는 응접실 세트 연출, 소아성애 논란이 있었던 〈누아르〉의 키라키라 스타일링, 그 외 트리거를 당기는 뮤직비디오 장면, 광고 이미지, 무대 의상, 콘셉트를 향한 꾸준한 비판의 목소리는 〈날라리〉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날라리〉의 화자 선미는 들끓는 오해와 소문을 해명하기도 “애석”하다고 한다. “분위기가 좋아 그렇다면” 상관없고 “가루가 되도록 터는 것도” 괜찮다고 말이다. 〈날라리〉의 선미는 자신을 ‘naughty’라는 형용사로 규정한다. 말을 안 들을(“naughty”) 뿐 slut(“날라리”)은 아니라고, 설사 내가 날라리인들 ‘어쩔 건데’라고 따져 물으며 아슬아슬하고 불편한 이미지를 늘어놓는 선미는 그의 표현대로 지독히도 ‘말을 안 듣는’ 여자다. 어쩌면 선미는 ‘I don’t give a shit’을 외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곳에서 더 높은 위치를 바라보는 여자에게는 이런 식의 뻔뻔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자의 삶이란 그토록 늘 딜레마다.

누군가가 선미를 ‘여성을 대변하는’ ‘여성주의적인’ 아티스트로 읽으려 한다면 꿈보다 해몽일 것이다. 여성 아티스트라고 해서 언제나 여성의 대의에 부합하는 이야기만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선미는 최선을 다해 ‘나’를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자신이 여성이기에 때때로 그의 경험이 여성의 경험과 손잡게 되곤 하지만, 그 같은 공감대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 다른 출발점에서, 조금씩 다르게 생긴 트랙을 뛰는 우리 모두가 한날 한시에 피니시 라인에서 만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니까. 다만 케이팝 신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토록 부지런하게 탐색하는 여성 가수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넘어져 본 여자가 더 잘 달릴 수 있고, 먼저 달려 본 여자가 있어야 뒤에 오는 여자도 더 잘 달릴 수 있기에. 선미가 〈날라리〉 후에 무슨 이야기를 더 하게 될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그는 이제 막 자기 것을 만들기 시작했을 뿐이다. 


[1] god의 히트곡들은 박진영-방시혁 듀오의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god의 전성기를 매니지먼트한 회사는 어쨌든 싸이더스(sidus)였다.

[2] 〈날라리〉 메시지 티저에서 선미가 낭독하는 내레이션 전문은 이렇다. “I wanna go up, up, up, even if I fall in the end. This is not my first step but my first move. Peel off the shell that held me back in the past. I’ll leave my scent behind, so take it and follow it.”

[3] 〈가시나〉부터 〈날라리〉까지 독립 이후 선미의 모든 뮤직비디오는 룸펜스가 감독했다. 다만 원더걸스의 〈I FEEL YOU〉 뮤직비디오를 참고해 보자. 80-90년대 MTV 스타일의 성애화된 여성 이미지-영상 문법을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검열 없이 ‘재연’할 수 있게 되자, 이 감독은 물 만난 고기가 된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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