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만의 남성성

다 쉰 떡밥 같지만 ‘야동을 보다가’ 얘길 다시 한 번 해야 겠다. 인디밴드 ‘중식이’가 2014년 발표한 이 곡의 남성 화자는 만년 무직 청년이다. 헤어진 여자친구의 근황을 알게 된 참이다. 성욕을 해결할 요량으로 내려받은 “야동”을 통해서다. 남자들에게는 비밀도 아닌 ‘국산 야동’의 생산 경로는 화자에게도 훤하다. 이 성관계 영상의 촬영과 유포는 전 여자친구 모르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는 틀린 그림 찾기라도 하듯 집요한 태도로 영상을 탐구한다. 자신의 음경과 남자의 음경을 비교한다. 자신은 본 적 없는 여자의 표정을 관찰한다. 화자가 이 ‘해프닝’을 통해 발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직업이 없으니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 여자가 없고, 여자가 없으니 외롭고, 외로우니 ‘남의 섹스’라도 엿봐야 하지만, ‘빼앗긴’ 여자가 출현하는 바람에 쾌락마저 봉쇄당하는, 나의 초라하고 남루한 남성성. 

N포세대의 대변인을 참칭하며 ‘중식이’가 재현한 남성성은 동세대 인셀(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의 멘탈리티에 근사했지만 딱히 획기적인 구석은 없었다. 대화 속에서건, 미디어 속에서건, 남성의 자기 위안은 -연민이냐 경멸이냐는 뉘앙스 차이가 있을 뿐- 손상된 남성성을 표상한다. 이 손상된 남성성의 배경이 ‘노란 장판’이라면 그 반대쪽 끝에는 ‘룸’이라는 강인한 남성성의 무대가 있다. ‘노란 장판’ 위 남자는 불법촬영물을 보며 자위를 하지만 ‘룸’ 속의 남자들은 여자를 줄 세우고 골라낸다. 전자가 후자보다 하층 계급의 남성이라는 추론은 현실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노란 장판’과 ‘룸’의 양극단을 연결하는 일직선 위에서 여성은 남성의 계급을 가리키는 지표로 기능한다.

책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미국의 젠더/퀴어/비평이론 학자 이브 세즈윅이 고안한 호모소셜homosocial 개념을 통해 남자-되기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호모소셜은 남성 구성원들이 서로를 ‘진정한’ 남자로 인정하고 인정받는 행위를 통해 구성되는 정상성 연대다. 그러나 이성애자-비장애인-남성이라는 정상성 제도는 폐쇄적인 만큼 취약하다. ‘여성적인 것’을 배제하고 금지하고 억압하는 “지속적인 경계선의 관리” 없이는 호모소셜리티도 유지될 수 없는바, 남성의 상호 간 승인과 연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성적 객체화가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다.[1] “자기 여자를 (적어도 한 명 이상) 소유하는 것”은 호모소셜에 진입하고자 하는 남성의 자기 증명 수단이다. 뒤집어 말하면, ’여자를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증명 수단의 부재로써 호모소셜을 열망하는 남성을 변두리에 정박시킨다. 열패감에 휩싸인 남자들은 분노한다. ‘나를 남자로 인정해주지 않는’ 호모소셜의 구성원이 아닌 ‘나를 남성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만든’ 여성을 향해.

지금까지 알려진 텔레그램 디지털 성착취 주동자들의 닉네임에는 어떤 경향성이 있다. ‘갓’이거나 ‘박사’이거나 ‘대장’이거나. 이들은 오프라인 세계에서 획득할 수 없었던 호칭을 온라인 세계에 와 스스로에게 직접 수여했다. 채팅방에 새까맣게 몰려든 남자들은 연령, 직업, 자산 등 현실의 ‘계급장’을 떼고 알몸이 된 모양새로 인정과 추종의 탑을 새로 지었다. ‘노예’로서의 여성이 피지배 계급으로 공유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N번방은 생산하고 유통하는 영상의 가학성으로 인해 더욱 공분을 샀다. 그곳에서는 여성의 주체성 박탈과 인간성 착취 자체가 콘텐츠였다. 운영자는 여성을 유인해 어떠한 지시에도 복종하도록 결박했고, 회원은 성욕을 자극하는 통상적인 문법에서조차 벗어난 성착취 현장을 포르노로 소비했다. 나는 작금의 한국 남성들이 성적 만족감과 권력감을 구분할 수 있는지 진정으로 의심스럽다. N번방은 양자를 구분할 능력을 상실했거나 구분의 필요성을 폐기해 버린 사람들이 벌인 범죄였다. 그것이 여성의 몸을 경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외부인-타자로서의 여성 없이 호모소셜은 존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남자-되기’는 여성이라는 기호를 필요로 한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여성이 부재하는 성적 쾌감은 ‘불완전하다’. 그런 것은 무능한 남성성의 방증이므로, 남자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성적 활동에 여성의 육체성을 개입시켜 왔다. 본을 뜬 것처럼 ‘사실적인’ 여성기 모형을 추구하는 남성 자위 기구는 실존하는 여성을 모델로 내세워 여성의 퍼스널리티를 기능화할 지경이다.[2] ‘리얼돌’은 무겁고, 비싸고, 관리가 까다로워도 수요가 뚜렷하다. 기술의 첨단에서 가능한 한 박진하게 구현된 여성 신체 모형을 안기기 때문이다. 상업포르노 속 연기보다 불법촬영물 속의 실제 상황이 더 ‘꼴리는’ 이유. 여성-기호를 향한 과도한 리얼리티 추구는 남성의 성적 만족과 권력감이 착종된 정도를 가늠하게 한다. 남성은 여성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호모소셜 입장권을 취득한다. 이 선후 관계는 전도시켜도 여전히 성립한다. 남성은 호모소셜 입장권을 취득하기 위해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클럽 ‘버닝썬’ 사건은 호모소셜에서 취급하는 여성의 ‘용도’를 더없이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클럽에서는 중추신경마비제(속칭 ‘물뽕’)를 이용해 여성을 강간하는 수법이 빈발했다는 고발이 있었고, ‘버닝썬’의 핵심 고객들이 여성의 신체 및 성관계 장면을 불법촬영해 돌려 본 정황이 밝혀졌다. 최대 가해자는 연예계 마당발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알 만한 남성 연예인들의 이름이 줄줄이 딸려 나왔다. 상대적으로 매력 자본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이 남자들은 ‘외로웠고’ ‘무시당했고’ 따위의 전형적인 성범죄 가해자 서사가 적용되지 않는 집단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자원’을 여자에게 ‘투자’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했다. 여성과의 성관계는 그 자체로 목적이기보다 호모소셜 사교 활동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대화, 협상, 교감의 능력은 성관계를 맺을 여성이 아닌 ‘후일담’을 공유하는 남성에게만 배타적으로 발현되었다. 이렇듯 여성을 ‘몸뚱이’로만 인식할 때 강간과 섹스의 경계는 오염된다. 오히려 강간과 섹스를 구분하는 진지함을 비웃는 태도야말로 남성성을 극적으로 과시하는 계제로 자리잡고 있다.

성폭력은 성별화된 폭력이다. 폭력은 힘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자 할 때 일어난다. 이 사회적인 행위에 ‘성’이 개입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본능이나 욕구의 문제로 자연화하는 유구한 입장은 성폭력의 본질로 진입하는 문 앞에 심어진 돌부리와도 같다. 성폭력을 성욕의 문제로 곡해하지 말라. 성욕 해소만이 문제라면 그것이 여자여야만 하는 이유를, 기절시켜서라도, 때려서라도, 죽여서라도 여성의 몸을 점거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해도 될 것 같으니까 하고, 걸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하고, 걸려도 될 것 같으니까 하는 것이다. 서로의 허물을 나누고 덮어주고 변호해 줄 남성 연대의 힘을 믿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26만이다.[3] 누구는 이 숫자가 과장이라고 한다. 누구는 이것이 특정 세대의 문제라고 한다. 누구는 이것이 ‘성적 호기심’이라 말하고, 누구는 이것이 ‘비정상’적인 엽기 행각이라고 말한다. 호모소셜 내에서도 자신이 최종까지 소속될 소집단을 비호하기 위해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거기로 그어진 선들은 충돌하고 당착한다. N번방이 사상 초유의 사태인 양 경악하는 기성 세대 남성의 호령 또한 ‘우리’를 지키기 위해 걸어 잠근 빗장일 뿐이다. ‘빨간 마후라’ 비디오 복사를 용돈벌이 삼은 과거를 흥겹게 떠들던 남자 예능인을 기억한다. 남자라면 ‘X양 비디오’에 앞다투어 열을 올리는 게 당연했던 시절을 통과했다. 기상천외한 초소형 카메라를, 소라넷을, 웹하드 카르텔을, 웰컴투비디오를 알고 있다. 남자들의 ‘흔한 단톡방’에서 무엇이 일상적으로 교환되는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어떤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지 목격했다. 이전 세대 남성은 온건해서 N번방을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툴’이 없었기 때문에 만들지 못한 것이다. 호모소셜은 기술과 법과 성인지감수성의 속도차가 발생시키는 지연 속에서 여성 착취의 외연을 꾸준히 확장해 왔다. 상당한 이용료가 요구되지 않았다면, 텔레그램보다 접근성이 좋은 플랫폼이었다면, 26만이 아니라 260만도 될 수 있었다.

IMF 이후 남성 생계부양 모델이 지탱하던 가부장 신화가 붕괴하면서 남자들은 ‘남자다움’에 도달하는 경로를 재모색해야 했다.[4] 경제력이 담보하는 ‘강하고 능력 있는’ 남성성 실현이 요원해진 세계에서 남성이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는 가장 직관적이고 값싼 방법은 여성의 비인간화다. 다른 건 몰라도 여성만큼은 완력으로 취할 수 있는 예외적 자원으로 여기는 탓이다. 남성의 자아상을 보호하는 완충재이자, 남성 권력을 확인하는 장소로써 여성은 남성을 단합시키는 정체성의 고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권력이 생기면 여자는 따라온다던 허풍 섞인 희망사항은 옛말이 되었다. 이 시대의 남성은 여성을 재화로 동원해 권력을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별 볼 일 없던 남자들은 디지털 성착취 ‘사업’으로 인정욕구를 채웠고 남자들의 지갑도 열었다. 이것이 계급 이동의 전망이 파괴된 사회에서 기어코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어떤 남자들의 ‘수완’이다. 여성을 밑천으로 이용해 이룩하는 ‘자수성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들은 악마도, 사회 부적응자도 아니다. 그들은 호모소셜의 논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체득하고 호모소셜이 약속한 특권을 누구보다 열렬하게 신봉한 후계자일 따름이다. 호모소셜의 인큐베이터가 차근차근 키워 낸 남자들의 현재를 똑바로 바라보라. 이것이 정상성이 지배하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가 승인한 남성성의 결과물이다. 이 쓰러져가는 성채의 병사들은 문화적 정체와 정서적 빈곤에 시달리면서 지나간 (남성성의)영광을 그리는 가짜 향수로 연명하고 있다. 버티는 이들에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다. 이제라도 문을 부수고 제 발로 나오거나, 추방되었던 자들에게 파괴당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1]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우에노 치즈코 지음, 나일동 역, 은행나무, 2015) 제2장 ‘호모소셜, 호모포비아, 여성 혐오’ 참조.

[2] 이데일리, “쿠팡 男자위용품 판매 논란…”성인인증 거쳐” Vs “女성상품화 심각”, 2018. 11. 28.,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394806619410312&mediaCodeNo=257&OutLnkChk=Y.

[3] 닷페이스, ‘N번방 사건 정리 – 성범죄자 수만명이 모여 있는 텔레그램방이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PGfv4Yoxfzo)’ 참조.

[4] <한국, 남자>(최태섭 지음, 은행나무, 2018) 4장 ‘변화와 몰락 – 고개 숙인 남자: IMF 외환 위기와 ‘남성성의 위기’’ 참조.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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