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애 엄마들은 백화점에서 ‘꿀’을 빨까

한국행 소식을 들은 지인들의 최대 걱정거리는 미세먼지였다. 미세먼지 때문에 5살배기 딸의 피부가 뒤집어졌다, 사람들이 비슷한 증상의 감기를 달고 다닌다, 예정되어 있던 야외 활동을 취소했다, 다른 나라였으면 휴교령 수준이다, 영유아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쏟아지는 말들에 유아용 마스크를 검색하며 근심이 깊어졌다. 아기와 함께하는 첫 장기 여행이었다. 10개월 아기와 타지에서 2주간 외부활동을 하려면 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다. 비상약, 체온계, 아기용 워시 제품, 로션, 발진 크림, 이앓이 젤, 손톱깎이 같은 기본 용품 외에, 매일매일…

이유식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서양식 이유식으로 아기 저체중 극복하기

  갓난쟁이와 온종일 부대끼다 보면 아주 사소한 일들도 도전으로 느껴지는데, 나에게는 속싸개(스와들업) 떼기나 밤중 수유 끊기, 백색소음 없이 재우기 등이 그랬다. 이 ‘핏덩이에서 아기로 이행하는 관문’들을 통과하려면 겨우 적응한 기존의 패턴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식(Baby Led Weaning, BLW)은 그중에서도 가장 긴장되는 과제다. 우유로만 영양분을 섭취해오던 아기에게 사람의 음식을 먹이려면 부지런히 장을 보고 식단도 신경 쓰고 부엌에 더 오래 서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유식…

네 결혼 너나 재밌지: tvN 〈신혼일기〉와 나영석의 매너리즘

클래스는 변한다  ‘유개념 예능’. 국내에서 가장 많은 코어 덕후를 보유한 최장수 예능 <무한도전>의 아이덴티티란 그런 것이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무한도전>은 어떤 심정적 유대의 고리가 되었다. 누군가 <무한도전>의 팬이라고 하면 최소한 ‘그쪽’은 아닐 거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진보진영의 정부 비판적 스탠스를 해학으로 버무려내는 배짱을 가진 김태호 PD의 공이었다. <무한도전>은 <무모한 도전>을 계승한 유사-삼류적 예능감과 <느낌표!> 시절…

빠순이에서 덕후로, 덕후에서 메타-덕질로 (2): 자유롭게 팬질 할 권리

벌집을 건드린 것이다. 지난 글 ‘빠순이에서 덕후로, 덕후에서 ‘메타-덕질’: 우리 시대의 주체적 덕질은 가능한가(링크)’ 이야기다. 개인 블로그에 글을 업로드하고 머지않아 젝스키스(이하 젝키) 팬들의 항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전운이 느껴졌다. 댓글 작성 권  한을 회원 전용으로 변경했다. 일부 젝키 팬들은 댓글을 달기 위해 블로그 서비스에 가입하기도 했다. 딴지일보에 원고가 올라간 익일에는 담당 기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일부 팬들이…

빠순이에서 덕후로, 덕후에서 메타-덕질로 (1): 우리 시대의 메타-덕질은 성공할까

빠순이와 오리지널 씬   벌써 이십 년이 다 돼가는 이야기지만, 1세대 아이돌 팬덤이 출현하던 20세기 말 ‘빠순이’라는 호칭은 아주 모욕적인 용법으로 쓰였다. 당시 피시통신을 주 무대로 활동하던 리스너들은 표절, 립싱크, 음악성 등을 빌미로 아이돌을 대차게 비판하면서 ‘수준 떨어지는 오빠’를 추앙하는 여성 팬들에게는 ‘빠순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매춘 여성을 지칭하는 비속어에서 파생됐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어원은 둘째 치더라도, ‘빠순이’라는 말에는 십 대 여성팬을 한 데…

김정숙 씨가 놓친 네 가지

‘삼포세대’라는 말이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이 2011년이었다. 6년 간 삶은 더 어려워진 듯하다. ‘우리는 왜 연애/결혼/출산을 하지 못하는가?’라는 신세 한탄은 ‘우리가 왜 연애/결혼/출산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정말로 연애/결혼/출산을 원하는가? 이전에는 조건이 따라주지 않아 우러러만 보던 삶의 목표들이 강요된 가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확산되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시작했다. 그래서 2017년의 이삼십대는 포기보다 ‘거부’가 어울리는 세대가 됐다. 애초에 추구하지 않는 바를 포기할 수는 없는…

산이는 왜 박근혜를 ‘나쁜 년’이라고 불러야 했나

‘티나’였을 것이다. 한국 힙한 씬에 최초로 등장한 팜므파탈의 원형, 남자 지갑에 빨대 꽂고 꿀 빨면서 뒤에서는 오입질로 뒤통수치는 남성들의 적. 그 한국형-된장녀형 악녀의 기원을 찾으려면 브라운아이드소울 1집 <Soul Free>(2003)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CB Mass에서 막 손 털고 나온 최자와 개코가 피쳐링한 곡 ‘Candy’에 등장하는 티나 얘기다. 악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최자와 친구를 만류하는 개코의…

걸그룹의 표정 / 소녀형 그룹 양산 러쉬에 부쳐

  신드롬이었다. 하이 포니테일을 틀어올린 안소희가 고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만두처럼 빵빵한 볼을 가리며 ‘어머나’ 다시 한 번 말해보라던 순간, 원더걸스의 ‘텔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소희는 초대 국민 여동생 문근영(<어린신부>)의 왕관을 이어받았다. 모르는 사람도 없겠지만 가수로서의 소희는 절망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작은 성량, 불안한 음정, 음이탈도 예사였다. 근데 뭐, 어쩌라고? ‘어머나’ 하나만 야무지게 보여주면 그만이다.…

아기 예찬

  개, 고양이, 심지어 조류나 설치류까지도, 모든 동물은 아기일 때 가장 예쁘고 귀엽지만, 그중에서도 인간 아기는 정말로 대단하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서는 싱그러운 생명의 냄새가 난다. 아기를 품에 안고 있으면 머리통을 덮고 있는 배냇머리가 가는 해초처럼 피부를 간질인다. 우유 외에 다른 음식을 접해본 적 없는 입에서는 달큰한 숨이 뿜어져 나온다. 아직 작고 여린 성대로 옹알이를 하면…

넌 내 하나뿐인 태양

  아기를 떨어뜨리겠다는 나의 의지는 완강했다. 엄마가 되기는커녕 누군가를 반려자로 삼을 준비조차 되지 않았던 나다. 그 존재가 내 마음 속에 한 줌의 불행이라도 싹트게 할 거라면 애초에 만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 모자란 그릇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이 세상과 연을 맺게 된 너를 미워하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귀가 먹은 듯이 고요하고 오싹할 만큼 불안한 나날들이었다. 서늘해진 아침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숨죽여 울던 기억. 자궁 속에…

무뎌진다는 것

아기가 생긴 뒤 내가 살던 우주는 급격히 수축했다. 개인이 가진 재능이나 유망함과는 관계 없이, 어머니가 된 여자들의 이름은 적어도 일 년 간 사회에서 사라진다. 행동 반경은 몇십 평 이내의 실내 공간으로 줄어들고, 일상생활은 아기가 자고 먹는 시간을 축으로 삼아 쳇바퀴를 돈다. 하루 중 가장 오래 대화하는 상대는 간헐적으로 아, 우 정도의 옹알이밖에 할 줄 모르는 아기이고, 세상사는 TV나 인터넷, 남편, 가족, 친구의 입을 통해 제한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출산 후 제대로 외출하기는 처음이었던 지난 주말, 이전에는 한번도 와본…

내 아버지

아버지는 딸들을 이년아, 저년아 하고 불렀다. 일상적으로 멀쩡한 자식 이름 두고 년이라는 호칭을 쓸 정도로 미치광이는 아니었고, 뭔가 수틀렸을 때나 우리를 위협하려고 할 때, 그 튀어나올 듯이 커다랗고 노란 눈을 부릅뜨면서 ‘저년이…’라고 으르렁거리곤 했다. 때로는 술이 떡이 되게 마시고 들어와 이유 없이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나를 불러다 앉혀놓고 아빠가 죽어도 무덤에도 안올 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나의 작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 절대적 권력자, 의지해야 할 보호자가 나를 천하게…

헬육아의 꽃

은 모유수유다. 농담이 아니라 모유수유야말로 전쟁이다. 한 달 사이 모유수유를 포기할까 수십 번도 더 고민했다. 아기에게 최고의 영양분을 제공하고 모자간 애착 형성을 돕는다지만, 내 정신과 육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모유를 고집해야 하는가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이 너무나도 쉽게 모유수유가 최고라고 부르짖기에, 나는 출산이 끝나면 모체에서 물흐르듯 모유가 샘솟아 나오고 아기는 본능에 따라 가슴에 매달려 우유를 받아먹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모유수유는 자연의 섭리라기엔 너무나도, 곤욕스럽다. 모유수유를 자리잡게 만들기 위해서는 -모유수는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젖을 뚫어야 하고, 젖 양을 늘려야 하고, 엄마는 수유 자세를 연습해야…

출산 후: 일주일 간의 기록

#1일째 저녁 9시 20분 경 분만을 마쳤다. 조무사들이 뜨뜻한 피비린내가 나는 아기를 가슴 위에 얹어주고 일사불란하게 장비를 정리한다. 피와 땀과 토사물로 범벅이 된 침대 위에 넋을 놓고 누워 있다. 구역질이 나고(Nausea) 통증이 심하다고 하니 촉진제 들어갔던 자리에 진통제를 놓는다. 미드와이프들이 수유를 해 보라고 권유한다. 수유하는 방법을 수십 번도 더 읽고 머릿속에 익혀놨는데 막상 실전에 도입하려니 효과가 없다. 무통주사 부작용인지 아기가 젖을 못 찾는 것이다. 30분이 넘도록 시도해서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