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만에

  5일만 더 지났으면 블로그 이사하고 정확히 일 년 만에 쓰는 글이 될 뻔했다. 왜 일 년동안 아무런 활동도 없었냐면, 이전 블로그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내가 그곳을 버려둔 사이 들어와 있던 출간 제의를 발견했고 그렇게 책을 쓰기 시작해 완성하기까지 일 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기존에 있던 글을 모은 것도 아니고, 내가 매우 느리게 쓰기도 하고, 한…

블로그를 옮기며

  임신을 발견한 직후 호주로 이주하기까지 정확히 3개월이 걸렸다. 평생 익힌 재주라고는 글 쓰기밖에 없는데, 영어 모국어 화자가 아닌 내가 현지에서 ‘무엇을 쓰는 사람’으로서 커리어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작은 것이나마 기록해보자는 막막한 심정으로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열었다. 한국 업체로부터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바이럴 블로그가 될 수는 없겠지만, 구글 광고 정도는 달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넌 내 하나뿐인 태양

  아기를 떨어뜨리겠다는 나의 의지는 완강했다. 엄마가 되기는커녕 누군가를 반려자로 삼을 준비조차 되지 않았던 나다. 그 존재가 내 마음 속에 한 줌의 불행이라도 싹트게 할 거라면 애초에 만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 모자란 그릇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이 세상과 연을 맺게 된 너를 미워하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귀가 먹은 듯이 고요하고 오싹할 만큼 불안한 나날들이었다. 서늘해진 아침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숨죽여 울던 기억. 자궁 속에…

무뎌진다는 것

아기가 생긴 뒤 내가 살던 우주는 급격히 수축했다. 개인이 가진 재능이나 유망함과는 관계 없이, 어머니가 된 여자들의 이름은 적어도 일 년 간 사회에서 사라진다. 행동 반경은 몇십 평 이내의 실내 공간으로 줄어들고, 일상생활은 아기가 자고 먹는 시간을 축으로 삼아 쳇바퀴를 돈다. 하루 중 가장 오래 대화하는 상대는 간헐적으로 아, 우 정도의 옹알이밖에 할 줄 모르는 아기이고, 세상사는 TV나 인터넷, 남편, 가족, 친구의 입을 통해 제한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출산 후 제대로 외출하기는 처음이었던 지난 주말, 이전에는 한번도 와본…

내 아버지

아버지는 딸들을 이년아, 저년아 하고 불렀다. 일상적으로 멀쩡한 자식 이름 두고 년이라는 호칭을 쓸 정도로 미치광이는 아니었고, 뭔가 수틀렸을 때나 우리를 위협하려고 할 때, 그 튀어나올 듯이 커다랗고 노란 눈을 부릅뜨면서 ‘저년이…’라고 으르렁거리곤 했다. 때로는 술이 떡이 되게 마시고 들어와 이유 없이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나를 불러다 앉혀놓고 아빠가 죽어도 무덤에도 안올 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나의 작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 절대적 권력자, 의지해야 할 보호자가 나를 천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