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야 사는 여자들(1): 사건의 재구성

  연애하며 작아지기 남자들이 잘난 여자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나는 연애라는 친밀한 관계를 통해 본심을 엿보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시 나에겐 서울 소재의 대학생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타이틀도 없었는데, 나와의 학력 차이가 큰 남자들은 나의 존재를 도저히 못견뎌하는 듯 했다. 세상에는 (비꼬는 의미로) “가방끈 길어서 좋겠다”, “너는 네가 잘난 줄 알지”, “네가 하는 공부는 쓰레기고…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남자아이들과 치고 박고 싸우던 ‘골목대장’ 여자아이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막 2차성징이 시작된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게 가슴을 맞고 돌아와 울곤 했다. 또래에 비해 키와 덩치가 엄청나게 컸던 그 아이, 약간 어눌하지만 여자아이들 앞에 나서서 싸우며 ‘왕언니’를 자처했던 그 애는 더 이상 어떤 위협도 되지 못했다. 남자아이들은 그 애의 육중한 몸과 거대한 가슴을 두고 키득거렸다. 머지않아 누군가 그 애를 ‘따먹었’는데 너무 못생기고 뚱뚱해서 엎어놓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초등학교…

불법의 문턱에서: 임신중단은 ‘내 맘’입니다

17주 4일이었다. 17주 4일! 평생 이 충격적인 숫자를 잊지 못할 것이다. 뒤늦게 몸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회사 화장실에서 확인한 임신 테스트기에는 두 줄이 선명했다. 점심시간에 산부인과를 찾았다. 아랫배에 차가운 크림을 바르고 초음파 기계가 몇 번 더듬자 조그맣게 옹그린 척추뼈가 스크린에 떠올랐다.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의사는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크기는 11센티미터가량, 골격 및 기관이 잘 형성되었으며, 남자아이로 보인다고 했다. 나는 태아를 확인한 순간부터 숨죽이며 울기만 했고 상황을 눈치챈 의사는 주변에…

왜 애 엄마들은 백화점에서 ‘꿀’을 빨까

한국행 소식을 들은 지인들의 최대 걱정거리는 미세먼지였다. 미세먼지 때문에 5살배기 딸의 피부가 뒤집어졌다, 사람들이 비슷한 증상의 감기를 달고 다닌다, 예정되어 있던 야외 활동을 취소했다, 다른 나라였으면 휴교령 수준이다, 영유아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쏟아지는 말들에 유아용 마스크를 검색하며 근심이 깊어졌다. 아기와 함께하는 첫 장기 여행이었다. 10개월 아기와 타지에서 2주간 외부활동을 하려면 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다. 비상약, 체온계, 아기용 워시 제품, 로션, 발진 크림, 이앓이 젤, 손톱깎이 같은 기본 용품 외에, 매일매일…

산이는 왜 박근혜를 ‘나쁜 년’이라고 불러야 했나

‘티나’였을 것이다. 한국 힙한 씬에 최초로 등장한 팜므파탈의 원형, 남자 지갑에 빨대 꽂고 꿀 빨면서 뒤에서는 오입질로 뒤통수치는 남성들의 적. 그 한국형-된장녀형 악녀의 기원을 찾으려면 브라운아이드소울 1집 <Soul Free>(2003)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CB Mass에서 막 손 털고 나온 최자와 개코가 피쳐링한 곡 ‘Candy’에 등장하는 티나 얘기다. 악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최자와 친구를 만류하는 개코의…

누구 좋으라고 하는 황혼 육아인가

며칠 전 한국일보에서 출산 후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대해 쓴 에세이를 읽었다. 이런 주제의 글을 즐겨 보는 성미도 아니거니와 헤드라인이 기깔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클릭한 이유는 순전히 일러스트 때문이었다. 일러스트에는 엄마를 찾는 갓난쟁이와 단 둘이 남겨진 할머니, 그리고 그 뒤편으로 핸드백을 들고 도망치듯 대문을 나서는 딸이 그러져 있었다. 도대체 본문의 요지가 무엇이기에 이런 삽화를 뽑았나 궁금해졌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많은 여성이 출산을 기점으로 어머니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게 되면서 모녀관계가 재정립되는데,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오랫동안 데면데면한 관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