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엄마들 BROKEN MUMS (2): 〈유전〉, 가부장제 컬트

* 이 글에는 영화 〈유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재현할 수 없는 것 애니(토니 콜레트 분)는 아들 피터가 못미덥다. 친구네 하우스 파티에 다녀오겠다고 차를 빌려 달란다. 피터가 술을 마실 것 같다고 걱정하던 애니는 찰리를 딸려 보낸다. 챙겨야 할 여동생이 있으면 나을까 싶었다. 하지만 열 여섯 피터는 너무 어리다. 그는 기어코 찰리를 떼어 놓는다. 열 세 살 찰리는…

부서진 엄마들 Broken Mums (1): 〈툴리〉, 육아 외주 공포

셋째가 제일 쉽다고? 영화 〈툴리〉의 마를로(샤를리즈 테론 분)는 기진맥진하다. 윤기 없이 마른 금발은 세어버린 백발처럼 보이고, 충혈된 눈자위에 눈동자마저 빛 바랜 듯 엷은 하늘색을 띤다. 후 불면 재가 되어 바스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마를로는 출산을 앞두고 있다. 계획하지 않은 아이였다. 그는 이미 딸 사라와 아들 조나를 등교시키는 아침마다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춘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어제가 오면(See You Yesterday)」의 결말이 열려야 하는 이유

  지난 달엔가, 트위터에서 우연히 본 영상을 지금도 종종 떠올린다. 미국 쇼핑몰 주차장에서 행인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장면이었다. 경찰은 든 것을 모두 내려놓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총성이 터질 것 같은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상대편에서는 한 흑인 여성의 절규가 들려왔다. 아이를 안고 있다고 말이다. 경찰은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같은 명령을…

〈옥자〉: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사이에서 길을 잃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적’이라는 표현을 칭찬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영화에 관해서라면 <국가대표>나 <국제시장>처럼 애국심을 쥐어짜는 ‘국뽕’ 무비나 <신세계> 이후 우후죽순 조류를 형성한 브로맨스 누아르를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봉준호는 달랐다. 비이성이 지배하는 음습한 공간을 슬랩스틱이나 ‘찰진’ 욕설 같은 남성적 유머가 가로지른다. 무능한 공권력으로 대표되는 80년대의 반지성주의가 촌극을 빚는 <살인의 추억>, 소도시의 폐쇄적 분위기와 뒤틀린 모성이 절묘하게 조화하는 <마더>. 밭두렁에서 김상경을 날아 차는 송강호, 한강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박해일, 관광버스에서 넋 나간 춤을 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