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엄마들 BROKEN MUMS (3): 웹툰 〈남의 부인〉, 그 남자의 진짜 파트너는 누구인가

나만 바라봐 ‘친구 없는 남자’.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으로 친구 없는 남자를 꼽는 여자들을 왕왕 본 적 있다. 낮은 술자리 빈도, 퇴근하면 칼 같이 귀가, 괜히 바람이나 넣는 허풍선이들 차단, 나를 남자들 친목 모임에 끌고 나갈 일도 없는, 그토록 ‘가정적인’ 남자와의 결혼생활은 비교적 수월할 거라고 말이다. 여자들은 남자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한 덩어리로 반죽하는 꿈을 꾸는…

부서진 엄마들 Broken Mums (1): 〈툴리〉, 육아 외주 공포

셋째가 제일 쉽다고? 영화 〈툴리〉의 마를로(샤를리즈 테론 분)는 기진맥진하다. 윤기 없이 마른 금발은 세어버린 백발처럼 보이고, 충혈된 눈자위에 눈동자마저 빛 바랜 듯 엷은 하늘색을 띤다. 후 불면 재가 되어 바스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마를로는 출산을 앞두고 있다. 계획하지 않은 아이였다. 그는 이미 딸 사라와 아들 조나를 등교시키는 아침마다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춘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태아보다 임산부: 임산부 취급을 위한 다섯 가지 주의사항

  지하철 선반 위쪽을 올려다보면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태어날 새 생명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세요, 아기가 고마워해요”. 임산부 배려석 벽면에 붙은 커다란 핑크 스티커는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자리’임을 강조한다. 임신 전이었다면 무감각하게 지나쳤을 문장 하나하나가 의심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임산부란 무엇인가? 태아를 앞세우지 않고는 자리 하나도 보전할 수 없단 말인가? 이 나라에서 보이는 임산부 관련 캠페인은 찍어낸 듯이 똑같은 전략을 취하고…

김정숙 씨가 놓친 네 가지

‘삼포세대’라는 말이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이 2011년이었다. 6년 간 삶은 더 어려워진 듯하다. ‘우리는 왜 연애/결혼/출산을 하지 못하는가?’라는 신세 한탄은 ‘우리가 왜 연애/결혼/출산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정말로 연애/결혼/출산을 원하는가? 이전에는 조건이 따라주지 않아 우러러만 보던 삶의 목표들이 강요된 가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확산되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시작했다. 그래서 2017년의 이삼십대는 포기보다 ‘거부’가 어울리는 세대가 됐다. 애초에 추구하지 않는 바를 포기할 수는 없는…

출산 후: 일주일 간의 기록

#1일째 저녁 9시 20분 경 분만을 마쳤다. 조무사들이 뜨뜻한 피비린내가 나는 아기를 가슴 위에 얹어주고 일사불란하게 장비를 정리한다. 피와 땀과 토사물로 범벅이 된 침대 위에 넋을 놓고 누워 있다. 구역질이 나고(Nausea) 통증이 심하다고 하니 촉진제 들어갔던 자리에 진통제를 놓는다. 미드와이프들이 수유를 해 보라고 권유한다. 수유하는 방법을 수십 번도 더 읽고 머릿속에 익혀놨는데 막상 실전에 도입하려니 효과가 없다. 무통주사 부작용인지 아기가 젖을 못 찾는 것이다. 30분이 넘도록 시도해서 어떻게…

엄마됨을 인정하는 일 2

엄마가 되려고 태어난 여자는 없다. 여성이 살면서 엄마로서의 길을 걷느냐 마느냐는 취사선택의 문제이지, 단지 자궁을 가졌다는 이유로 ‘재생산’을 필생의 의무로 부과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말로’ 모성은 아름답고 엄마는 강한 존재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는 어머니라는 ‘신성한’ 역할에 개인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여자라면 출산을 계기로 각성해야 마땅할 절대불변의 진리라도 되는 양, 엄마, 아빠, 시댁, 옆집 아줌마, 처음 본 할아버지, 가장이 되어본 적 없고 엄마 되어볼 일 없을 남성마저 여성을 앉혀놓고 모성애를 훈육하지 못해 안달이다. 혹자들은 모성이 하늘에서…

엄마됨을 인정하는 일 1

아기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아직도 선연한 그 감정을 떠올리면 가슴 속이 서늘해진다. 생리가 끊긴지 4개월째, 과식하지 않아도 늘 배가 빵빵하고 가끔은 기포가 터지듯 톡톡 두드리는 느낌이 드는데도 별 일 있겠거니 애써 무시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저녁, 침대에 엎드려 눕는데 문득 아랫배에서 이물감을 느꼈다. 이상한 직감이 스쳤다. 배를 만져봤다. 지방이라면 똑바로 누웠을 때 아래로 퍼지게 마련인데, 배 아래 완만한 지붕 같은 것이 솟아올라 있었다. 두 시간, 세 시간을 배만 더듬거리는데도 동그란 집은 사라지지 않고 거기에 있었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