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다 된 만화에 페미니즘 끼얹기」가 나옵니다

  제가 쓴 책 「다 된 만화에 페미니즘 끼얹기: 여성 서사 웹툰 읽기」의 출간이 임박했습니다. 2017년에 썼던 웹툰 리뷰 ‘괴물이 된 여자들: 만화 속 ‘성형 미인’과 루키즘(http://taengal.com/archives/171)’과 ‘덴마 8년: 양영순의 여성관은 발전하고 있을까(http://taengal.com/archives/157)’ 이후 출판사 산디에서 웹툰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출간을 제안받아 시작한 프로젝트고요. 2018년 7월부터 글을 쓰고 엎기를 거듭하면서 2019년 5월에 마침내 모든 원고를…

빻은 유아동 콘텐츠에 지친 당신을 위한 그림책 추천

  며칠 전 케이마트(호주의 대형 잡화 마트)를 배회하다가 이상한 물건을 봤다. 「여자는 방귀 안 껴, 알겠니!!(Girls Don’t Fart Okay!!)」라는 어린이용 그림책이었다. 불길한 직감에 이끌리며 책을 후루룩 살펴봤다. 주인공은 남자아이다. 그 앞에 여자 요정이 나타나 “여자는 방귀를 끼지 않는다”고 우긴다. “여자의 몸은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고 말이다. 주인공은 그의 동성 친구들과 함께 사실 여부를 확인하러 떠난다. 여러가지…

사라져야 사는 여자들(1): 사건의 재구성

  연애하며 작아지기 남자들이 잘난 여자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나는 연애라는 친밀한 관계를 통해 본심을 엿보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시 나에겐 서울 소재의 대학생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타이틀도 없었는데, 나와의 학력 차이가 큰 남자들은 나의 존재를 도저히 못견뎌하는 듯 했다. 세상에는 (비꼬는 의미로) “가방끈 길어서 좋겠다”, “너는 네가 잘난 줄 알지”, “네가 하는 공부는 쓰레기고…

여자의 유통기한에 관하여: 아재와 미소녀의 불유쾌한 만남

와인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유우-머에 그렇게들 박수를 쳐댔더랬다. 여자가 불티나게 팔리는 나이는 스물 셋 넷, 제값을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은 스물다섯, 스물여섯은 땡처리, 스물일곱부터는 폐기처분이라는 뜻이었다. 서른이면 ‘상폐녀(상장폐지녀)’라고도 했다. 대중 일반의 공감을 등에 업고 포장지만 바꿔가며 신나게 유포되어 온 메시지 “팔릴 때 좋은 남자 잡아라(시집가라)”는 농담을 가장한 브레인워싱이었다.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들자 누가…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남자아이들과 치고 박고 싸우던 ‘골목대장’ 여자아이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막 2차성징이 시작된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게 가슴을 맞고 돌아와 울곤 했다. 또래에 비해 키와 덩치가 엄청나게 컸던 그 아이, 약간 어눌하지만 여자아이들 앞에 나서서 싸우며 ‘왕언니’를 자처했던 그 애는 더 이상 어떤 위협도 되지 못했다. 남자아이들은 그 애의 육중한 몸과 거대한 가슴을 두고 키득거렸다. 머지않아 누군가 그 애를 ‘따먹었’는데 너무 못생기고 뚱뚱해서 엎어놓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초등학교…

괴물이 된 여자들: 만화 속 ‘성형 미인’과 루키즘

‘오크’.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여성들에게 붙은 새 별명이었다. 오크의 ‘크’를 떼어 접미사로 붙이면 놀리기 퍽 좋은 이름을 만들 수 있었다. ‘전여오크’, ‘효크’. 혐오의 타깃이 된 여성은 혹독한 ‘얼평’으로 가중처벌을 받는다. 넌 여자’도’ 아니라는 조롱, 존재 자체가 위협이라는 야유 속에서 여성들은 때려잡아야 할 몬스터가 되었다. 그로부터 5년쯤 후에는 새 유형의 몬스터가 업데이트되었다. 이마에 보형물을 넣고, 버선코를 만들고, 눈 밑에 지방을 이식하고, 광대뼈를 깎고 양악수술을 한 ‘성형 괴물’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성형외과를 빠져나오는…

태아보다 임산부: 임산부 취급을 위한 다섯 가지 주의사항

  지하철 선반 위쪽을 올려다보면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태어날 새 생명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세요, 아기가 고마워해요”. 임산부 배려석 벽면에 붙은 커다란 핑크 스티커는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자리’임을 강조한다. 임신 전이었다면 무감각하게 지나쳤을 문장 하나하나가 의심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임산부란 무엇인가? 태아를 앞세우지 않고는 자리 하나도 보전할 수 없단 말인가? 이 나라에서 보이는 임산부 관련 캠페인은 찍어낸 듯이 똑같은 전략을 취하고…

이효리와 ‘black’: 섹스 심벌의 성애화 탈출기

2005년 당시 스포츠 신문의 이효리 관련 기사 헤드라인 이효리가 스포츠신문 1면을 대서특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효리보다도 효리 가슴이 주인공이었다고 해야겠다. 이효리 신드롬에는 김완선이나 엄정화 같은 여성 솔로 가수를 소비하던 90년대적 양식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텐미닛’의 대성공을 기점으로 여성의 신체는 조각났다. 공공의 품평 대상이 된 가슴을 누군가는 욕망하고, 가짜 가슴이라 비난도 하였으며, 노골적 성 상품화라고 백안시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효리는 너무도 잘 나갔고, 이후 가요계에는…

불법의 문턱에서: 임신중단은 ‘내 맘’입니다

17주 4일이었다. 17주 4일! 평생 이 충격적인 숫자를 잊지 못할 것이다. 뒤늦게 몸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회사 화장실에서 확인한 임신 테스트기에는 두 줄이 선명했다. 점심시간에 산부인과를 찾았다. 아랫배에 차가운 크림을 바르고 초음파 기계가 몇 번 더듬자 조그맣게 옹그린 척추뼈가 스크린에 떠올랐다.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의사는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크기는 11센티미터가량, 골격 및 기관이 잘 형성되었으며, 남자아이로 보인다고 했다. 나는 태아를 확인한 순간부터 숨죽이며 울기만 했고 상황을 눈치챈 의사는 주변에…

안녕, ‘완모’ 신화: 분유 수유한 당신, 참 잘했어요

모유수유의 고충   왜 모유수유를 결심했던가? 솔직히 말하면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좋다니까, 그게 전부였다. (호주) 병원에서는 진료를 받을 때마다 나의 수유 계획을 물었고, 모유의 장점을 설명하는 책자들을 안겨주며 모유수유를 푸시했다. 모유는 아기에게 최고의 영양분을 제공한다, 모유가 신생아 면역력을 향상시킨다, 스킨십을 통해 아이와 산모의 유대감이 높아진다, 자궁수축이 촉진되어 산후회복이 빠르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젖병보다 위생적이다, 유방암과 난소암 등 여성질환을 예방한다 등등 모유수유를 예찬론은 끝을 몰랐다. 나는 책장을…

<덴마> 8년: 양영순의 여성관은 발전하고 있을까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더우먼>과 <악녀>의 극장가 개봉은 참으로 시기적절하다. 여성 감독 패티 젠킨스가 메가폰을 잡고 갤 가돗이 주연한 여성 히어로 영화, 김옥빈이 쌍검과 도끼를 휘두르며 강도 높은 무술 연기를 소화하는 여성 원톱 액션 영화에는 보장되는 수요층이 있다. 바로 여성 관객이다. 주류 영화계는 여성 배우에게 아주 자그마한 자리만을 허락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사랑스러운 히로인으로,…

왜 애 엄마들은 백화점에서 ‘꿀’을 빨까

한국행 소식을 들은 지인들의 최대 걱정거리는 미세먼지였다. 미세먼지 때문에 5살배기 딸의 피부가 뒤집어졌다, 사람들이 비슷한 증상의 감기를 달고 다닌다, 예정되어 있던 야외 활동을 취소했다, 다른 나라였으면 휴교령 수준이다, 영유아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쏟아지는 말들에 유아용 마스크를 검색하며 근심이 깊어졌다. 아기와 함께하는 첫 장기 여행이었다. 10개월 아기와 타지에서 2주간 외부활동을 하려면 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다. 비상약, 체온계, 아기용 워시 제품, 로션, 발진 크림, 이앓이 젤, 손톱깎이 같은 기본 용품 외에, 매일매일…

김정숙 씨가 놓친 네 가지

‘삼포세대’라는 말이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이 2011년이었다. 6년 간 삶은 더 어려워진 듯하다. ‘우리는 왜 연애/결혼/출산을 하지 못하는가?’라는 신세 한탄은 ‘우리가 왜 연애/결혼/출산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정말로 연애/결혼/출산을 원하는가? 이전에는 조건이 따라주지 않아 우러러만 보던 삶의 목표들이 강요된 가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확산되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시작했다. 그래서 2017년의 이삼십대는 포기보다 ‘거부’가 어울리는 세대가 됐다. 애초에 추구하지 않는 바를 포기할 수는 없는…

산이는 왜 박근혜를 ‘나쁜 년’이라고 불러야 했나

‘티나’였을 것이다. 한국 힙한 씬에 최초로 등장한 팜므파탈의 원형, 남자 지갑에 빨대 꽂고 꿀 빨면서 뒤에서는 오입질로 뒤통수치는 남성들의 적. 그 한국형-된장녀형 악녀의 기원을 찾으려면 브라운아이드소울 1집 <Soul Free>(2003)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CB Mass에서 막 손 털고 나온 최자와 개코가 피쳐링한 곡 ‘Candy’에 등장하는 티나 얘기다. 악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최자와 친구를 만류하는 개코의…